[이슈밸리=한유진 기자]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가 애리조나에 이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일대에 두 번째 대규모 생산 거점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이사회 최종 의결이나 회사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현실화할 경우 이는 단순한 해외 공장 증설을 넘어 미국 중심의 AI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중대 변수로 평가된다.
대만 3대 일간지 중 한 곳인 자유시보는 29일 반도체 장비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텍사스에 첨단 웨이퍼 공장 6곳을 추가로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댈러스가 유력 후보지로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애리조나의 생산기지와 텍사스의 설계·서버·전력반도체 생태계를 잇는 ‘미국 남부 반도체 듀얼코어 회랑’ 구상이 부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움직임의 첫 번째 배경은 AI 반도체 고객의 압도적 미국 편중이다. TSMC의 올해 상반기 매출 가운데 미국에 본사를 둔 고객 비중은 75.64%로 집계됐다. 엔비디아와 AMD, 애플, 브로드컴, 퀄컴 등 핵심 고객이 미국에 집중된 만큼, 설계·생산·패키징·서버 조립을 미국 내에서 가까이 연결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AI 가속기와 고성능컴퓨팅(HPC) 반도체는 단순히 미세공정 칩을 많이 찍어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첨단 패키징, 고대역폭메모리(HBM), 기판, 전력·냉각 장비, 서버 제조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텍사스는 TI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과 테슬라, 대형 데이터센터 및 전력 인프라가 모인 지역이다. TSMC 입장에서는 애리조나가 최첨단 로직 생산의 전진기지라면, 텍사스는 고객과 후공정·장비·전력반도체 수요를 흡수하는 두 번째 축이 될 수 있다.
관세와 대만 리스크를 동시에 낮추는 포석
미국의 현지 생산 압박도 무시하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제조를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율 관세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거론해 왔다.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이면 TSMC는 관세와 무역 규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미국 정부에는 공급망 현지화 성과를 제시할 수 있다.
대만 내부의 부지·전력·용수 제약도 중장기 변수다. TSMC는 대만을 핵심 생산 기반으로 유지하되, 미국·일본·독일 등으로 생산 거점을 분산해 왔다. 텍사스 투자 검토는 유사시 공급 차질 위험을 줄이면서도 대만의 기술·생산 집중도를 완전히 해체하지 않는 ‘분산형 생산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텍사스에 최첨단 공정이 들어설 경우 TSMC에는 비용 부담도 커진다. 미국은 대만보다 인건비와 건설비, 협력업체 운영비가 높고 전문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TSMC가 미국 공장에 최신 공정을 배치하더라도, 대만 본토 공장과 같은 속도·수율·원가 경쟁력을 빠르게 재현할 수 있을지는 별도 과제다.
국내 반도체, 기회이자 더 거센 경쟁
텍사스는 삼성전자가 이미 파운드리 투자를 확대해 온 곳이다. TSMC가 댈러스권에 대규모 첨단 생산단지를 구축하면 미국 내 파운드리 경쟁은 ‘애리조나 TSMC 대 테일러 삼성’의 구도에서, 텍사스 전역의 고객·인력·장비 확보 경쟁으로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에는 고객이 미국 현지에서 파운드리 공급처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TSMC가 텍사스에 2나노미터급 등 더 앞선 공정을 배치한다면,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확보하려는 대형 고객 수주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TSMC는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 반면 삼성전자는 약 7% 수준으로 집계됐다.
국내 장비·소재 업체에는 미국 현지 동반 진출과 공급망 다변화라는 기회가 열릴 수 있는 동시에 TSMC 중심의 미국 클러스터가 커질수록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인력과 협력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싱가포르는 ‘구형·특화 공정’의 또 다른 축
TSMC 관계사인 VIS와 네덜란드 NXP의 합작법인 VSMC는 28일 싱가포르 탐피네스의 첫 12인치 공장 가동 행사를 열었다. 이 공장은 40~130나노미터 공정 기반의 아날로그·전력관리·차량용 반도체 등을 생산하며, 2027년 1분기 양산을 목표로 한다. 2029년 월 생산능력은 4만4000장 규모로 계획돼 있다.
이는 TSMC의 미국 투자와 성격이 다르다. 미국이 AI·HPC용 최첨단 공정의 중심축이라면, 싱가포르는 차량·산업·전력관리용 성숙공정과 특화 반도체 공급망의 안전판 역할을 맡는 구조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대만 한 곳’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은 첨단 로직, 싱가포르는 특화 공정, 일본·유럽은 자동차·산업용 반도체로 역할을 나누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기사에서 거론된 애리조나 투자액 2650억달러와 공장 10곳은 TSMC가 공식 발표한 내용과 차이가 있다. TSMC의 공식 발표 기준 애리조나 투자 계획은 총 1650억달러, 첨단 웨이퍼 공장 6곳, 첨단 패키징 시설 2곳, R&D 센터 1곳이다. 텍사스 투자설의 규모와 공정 수준은 공식 발표 전까지 업계 관측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TSMC는 텍사스 추가 투자설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고, 최종 투자 결정도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