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사회정책팀] 유럽연합(EU)이 브라질산 쇠고기와 닭고기 등 축산물에 대해 성장촉진용 항생제 사용 문제를 이유로 수입 제한에 나서면서, 최근 브라질과 농축산물 교역 확대에 합의한 한국 정부의 검역·안전 기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이번 사안을 두고 "브라질산 축산물이 위험하다"거나 "한국 정부가 이를 알고도 수입을 강행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 확인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EU와 한국은 식품안전 관리 철학과 수입 허가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책전문매체인 유랙티브(Euractiv)와 유로뉴스(Euronews),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는 브라질이 성장 촉진이나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오는 9월 3일부터 브라질산 쇠고기를 비롯한 동물성 축산물의 수입을 제한할 방침이다. 이번 조치는 올해 5월 잠정 발효된 EU-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처음 맞는 대형 통상 현안으로 평가된다.
브라질 정부는 즉각 반발하며 "40년 동안 유지해 온 유럽 시장 수출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EU가 문제 삼는 것은 최종 제품의 잔류 항생제만이 아니다. 가축이 사육되는 전 과정에서 성장촉진용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수출되는 소와 닭은 물론, 원료가 되는 동물 역시 동일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러한 규정이 항생제 내성(AMR) 확산을 막기 위한 '원헬스(One Health)' 정책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항생제 내성을 미래 인류의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 위협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프랑스 자크 들로르 연구소는 브라질이 최근 성장촉진용 항생제 일부를 금지했지만 자국 내 판매용 육류에만 적용되고, 해외 수출용 생산에는 여전히 동일한 약물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일랜드 농민협회(IFA)와 아일랜드 농민저널이 공동 실시한 현지 조사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처방전 없이 주사용 항생제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고, 가축 이력 추적과 약품 관리 체계도 EU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국내 검역 기준 충족 여부가 핵심"
반면 한국 정부는 최근 브라질과 농축산물 교역 확대에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브라질 방문 당시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닭고기와 계란 등 농축산물 교역 확대와 검역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수입을 전면 허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브라질산 축산물이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농림축산검역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역 및 위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출국 정부의 위생증명서 제출, 잔류 항생제 검사, 병원성 미생물 검사 등 국내 법령이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만 수입이 가능하다.
정부는 계란값 안정을 위해 올해 신선란 2억 개를 추가 수입하기로 하고 수입선을 미국, 태국, 브라질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브라질산 신선란이 처음으로 국내 검역과 식품안전 검사를 통과해 통관됐다. 다만 2억 개 전체를 브라질에서 들여오는 것은 아니며, 브라질은 추가 확보된 공급국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모든 수입 계란에 대해 국내 검역과 잔류물질 등 식품안전 기준을 충족해야만 유통을 허용한다.
여기서 EU와 한국의 접근 방식이 갈린다. EU는 생산 과정에서 성장촉진용 항생제를 사용했다면 최종 제품에 잔류물이 검출되지 않더라도 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과 국내 식품위생법에 따라 최종 제품의 잔류 항생제가 허용 기준(MRL)을 초과하는지, 위생과 검역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중심으로 관리한다.
즉 EU는 '어떻게 생산했는가'를 중시하는 예방 중심의 규제 체계를 운영하는 반면, 한국은 '최종 제품이 안전한가'를 중심으로 위해성을 관리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쟁점은 '안전성'보다 '관리 철학'의 차이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브라질산 축산물의 안전성 여부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EU는 동물복지와 항생제 내성 예방까지 포함한 예방적 규제를 채택하고 있고, 한국은 국제 기준에 따라 최종 제품의 위해성을 평가하는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EU가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인 브라질에 대해서까지 생산 단계의 항생제 사용을 문제 삼고 있는 만큼, 한국 역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브라질산 닭고기와 계란 수입 확대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안전성을 검증하는지, 성장촉진용 항생제 사용 여부까지 확인하는지, EU와 다른 검역 체계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품안전 전문가들은 EU와 한국은 생산 과정 관리와 최종 제품 관리라는 규제 철학의 차이가 있으며, 소비자 신뢰를 위해서는 정부가 검역 기준과 안전성 검증 절차를 더욱 투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식품안전·축산위생·검역 분야 한 전문가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브라질산 축산물이 곧바로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축산물을 놓고도 EU와 한국이 서로 다른 식품안전 철학과 규제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향후 브라질과의 축산물 교역이 확대될수록 정부가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검역 기준과 안전성 검증 절차를 설명하는 것이 정책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