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왜 패색 짙은데 공을 돌렸을까...30년 전 연병장 축구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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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왜 패색 짙은데 공을 돌렸을까...30년 전 연병장 축구였다면
  • 이슈밸리
  • 승인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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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밸리=윤대우 편집장] 30년 전, 이등병의 시간은 멈춘 듯 느리게 흘렀다. 그 시간을 견디게 했던, 아니 오히려 숨통을 조였던 것은 주말마다 연병장을 가득 채우던 ‘전투축구’였다. 주황색 체육복을 맞춰 입은 군인들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그곳에서 축구는 즐거움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고, 계급의 위계가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축구란 곧 ‘펑축구’였다. 수비수인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공이 떨어질 위치를 미리 파악해 자리를 잡고, 그저 온 힘을 다해 ‘펑’ 하고 멀리 차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고참들은 그 시원한 롱킥에 열광했고, 그것만이 수비수의 존재 이유였다.

그 시절, 금기(禁忌)는 분명했다.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거나, 수비수끼리 공을 돌리는 행위는 ‘죄악’이었다. 리스크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 그것이 곧 승리로 가는 길이라 믿었다. 빽패스나 횡패스를 하다가 공을 빼앗겨 실점이라도 하는 날에는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는 얼차려와 구타를 피할 길이 없었다. 내 몸 깊숙이 박힌 축구의 정의는 그렇게 ‘위험 요소의 원천 봉쇄’였다.

시간이 흘러 2026년, 월드컵 무대에서 마주한 한국 축구는 내 기억 속의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어제 치러진 남아공전, 우리 수비진은 끊임없이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건네고 수비수끼리 공을 돌리며 빌드업이라는 것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교한 설계가 아니었다.

공을 돌리다 번번이 상대에게 가로채기를 당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빌드업은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처럼 압도적인 개인기나 자로 잰 듯한 패스 성공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전술이 된다. 기본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의 횡패스는 그저 상대에게 기회를 헌납하는 자해 행위일 뿐이었다.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0-1로 뒤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패색이 짙은 후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선수들은 여전히 경기장 뒤편에서 공을 돌리고 있었다. 무승부를 노리는 작전이었다면 이해라도 해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가 간절한 상황에서 속도감 없는 빌드업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벤치에 앉아 있는 감독의 태도였다. 0-1로 지고 있는 상황, 자신의 전술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음에도 감독은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다급하게 지시를 내려도 모자랄 판에, 마치 경기를 미리 포기한 듯한 그 무기력한 모습이라니.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라는 무언의 메시지인가.

경기가 끝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화려한 전술을 구사하겠답시고 기본을 망각한 현대 축구보다는, 적어도 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을 멀리 걷어내고, 골을 먹히지 않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던 그 시절 군대 고참들의 ‘격정적 코칭’이 차라리 그립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라운드 위에서 살기를 품고 뛰던 30년 전 이등병의 기억 속에서, 오늘의 한국 축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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