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슈퍼사이클이 키운 승계 부담…증여세·주담대가 최대 변수
주주환원과 승계의 교차점, HD현대 거버넌스의 다음 과제는
[이슈밸리=한유진·임정은기자] HD현대그룹은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지배구조를 구축한 기업집단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순환출자 고리를 정리한 지주사 체제 아래 조선·정유·건설기계·전력기기 사업을 체계적으로 배치하며 그룹 운영의 효율성을 높였다. 최근에는 대형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사업 경쟁력까지 강화하며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 승계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로 기업가치가 급등하면서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증여세 부담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천억 원 규모의 주식담보대출 문제까지 얽혀 있어 HD현대의 지배구조는 현재 안정성과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업계 최고 수준의 응집력…단순한 지배구조의 힘
HD현대 지배구조의 핵심은 최상위 지주사인 HD현대를 중심으로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일렉트릭, HD현대사이트솔루션 등이 연결된 수직형 구조다.
한화오션이 그룹 내 여러 계열사의 공동 출자 형태를 갖고 있고, 삼성중공업 역시 삼성그룹 내 직접적인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구조를 보이는 것과 달리 HD현대는 ‘총수 일가-지주사-중간지주사-사업회사’로 이어지는 명확한 지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HD현대 최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 약 26.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정기선 회장은 약 6.1%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하면 37%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연금은 약 6~7% 수준의 지분을 보유한 주요 기관투자자로 분류된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구조가 경영 안정성과 신속한 의사결정 측면에서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잇따른 대형 합병…몸집 키우기와 효율화 동시에
HD현대는 최근 몇 년간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을 통해 조선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했고, 2026년에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통합한 'HD건설기계'를 출범시키며 건설장비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대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통합 작업이 단순한 지배구조 정리가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 효율화와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특히 조선업과 건설기계 사업 모두 글로벌 경기 회복과 인프라 투자 확대의 수혜 업종으로 꼽히면서 HD현대의 체급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SG 우수 기업 평가…주주환원 정책도 강화
HD현대는 ESG 분야에서도 국내 대기업 가운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 평가에서 통합 A+ 등급을 획득했으며, 글로벌 ESG 평가기관 MSCI에서도 A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배당 확대와 분기배당 정착을 통해 주주친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HD현대는 별도 기준 배당성향 70% 이상을 목표로 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제시해 왔으며, 꾸준한 현금배당과 자사주 활용 정책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고 있다.
과거 국내 대기업들이 성장 투자 중심 경영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최근 HD현대는 주주환원 확대를 기업가치 상승의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 호황이 키운 승계 부담
문제는 조선업 호황이 오히려 승계 비용을 급격히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기선 회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은 약 6% 수준이다. 향후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지분 상당 부분이 이전돼야 한다.
하지만 HD현대 기업가치가 급등하면서 정몽준 이사장 지분 가치는 수조 원 규모로 확대됐다.
시장에서는 최대주주 할증평가와 현행 상속·증여세율을 적용할 경우 실제 세부담이 수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최종 세액은 증여 방식과 시점, 공제 항목, 연부연납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정확한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변수는 주식담보대출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HD현대 지분 약 14.5%를 담보로 제공해 총 37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승계 과정에서는 이 담보 문제 역시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재계에서는 현재의 배당 확대 정책이 일반 주주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인 동시에 오너 일가의 향후 승계 재원 마련 측면에서도 의미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결국 HD현대 거버넌스의 진짜 시험대가 승계 이후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정기선 체제가 완성될 경우 HD현대는 더욱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그만큼 이사회와 사외이사의 독립성, 소수주주 보호 기능에 대한 시장의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대형 합병과 배당 정책, 자사주 활용 방안 등 주요 의사결정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향후 이사회가 일반 주주와 기업가치 제고라는 원칙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HD현대는 현재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정돈된 지배구조를 구축한 기업집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조선업 호황이 만들어낸 막대한 기업가치는 역설적으로 3세 승계 비용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앞으로 HD현대가 주주가치 제고와 경영권 승계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자본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연구소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의 우수성은 단순히 소유구조의 명확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며 "승계 과정에서도 소수주주 이익과 기업가치 제고 원칙이 얼마나 유지되는지가 장기적인 시장 신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