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권동혁 기자] 정부가 대한민국 첫 핵추진잠수함 개발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한국 해군 전력의 판이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수차례 추진과 중단을 반복했던 ‘핵잠수함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공개 로드맵과 일정표를 갖고 양지로 나온 것이다.
26일 경남 진해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30년대 후반에는 실전 배치가 가능해진다.
이번 사업 명칭은 ‘장보고 N사업’으로 정해졌다. 대한민국 최초 잠수함인 장보고함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차세대(Next generation)·핵추진(Nuclear powered)·첨단기술(Neo technology)을 결합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 “수개월 잠항”…북 잠수함 추적 판도 바뀌나
핵추진잠수함은 기존 디젤 잠수함과 차원이 다른 전략 자산으로 평가된다. 소형 원자로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만큼 연료 재충전 없이 장기간 잠항이 가능하고 속도 역시 훨씬 빠르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핵잠 도입이 사실상 필수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장관도 이날 “디젤 잠수함보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북한 잠수함 전력을 감시·추적할 수 있다”며 “수중 킬체인 구현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형 핵잠이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까지 갖출 경우, 단순한 잠수함 전력을 넘어 사실상 ‘보복 억제 플랫폼’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사 전문가들은 핵잠 확보가 현실화되면 동북아 해양 전략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해군은 디젤 잠수함 중심 체계를 유지해왔지만, 핵잠이 추가되면 장거리 원해 작전과 장기 잠항 감시 능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 협력 변수…“한국 건조 원칙 유지”
정부는 핵잠 원자로에 저농축우라늄(LEU)을 사용하겠다는 방침도 공개했다. 농축도 20% 미만 연료를 사용해 핵 비확산 우려를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또 설계·건조·정비·핵연료 관리·해체까지 전 과정을 국내 기술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한국 조선업과 원전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 건조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변수도 남아 있다. 핵잠 핵연료 확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핵잠 건조 거점으로 언급한 바 있어 향후 세부 협의 과정에서 진통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겠다”는 원칙과 함께 IAEA 안전조치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핵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면서 핵잠을 운용하겠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선제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 “한국 해군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 될 수도”
군 내부에서는 이번 발표를 두고 “해군 전력사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핵잠은 단순 무기체계가 아니라 국가 산업·원자력·조선·방산 기술이 총집결되는 초대형 전략 사업으로 분류된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인도 등 극소수 국가만 실전 운용 중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특히 최근 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이 한국 잠수함 기술력에 높은 평가를 내놓는 상황에서, 핵잠 개발은 K-방산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천문학적 사업비와 장기간 개발 리스크, 핵연료 확보 문제, 국제정치 변수 등은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그럼에도 군 안팎에서는 이번 ‘장보고 N사업’ 공개 자체가 이미 한국 안보 전략의 새로운 분기점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바다 아래의 전략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