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윤대우 편집장] 스승의 날을 맞아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40~50대 세대에게 학교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공간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칠고 위험한 일들도 적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다치고, 친구들과 몸싸움도 있었고, 교사에게 혼나거나 매를 맞는 일도 낯설지 않았다.
물론 그 시절의 체벌과 폭력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실제로 억울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필자가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된다. 수업 중 창문 밖을 봤다고 담임교사에게 40대 손바닥을 맞았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은 퉁퉁 부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날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다.
당시 많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세세히 알리지 않았다. 특히 담임 교사에게 혼 날 일은 더욱 그랬다.
오히려 부모들은 “왜 선생님께 혼났느냐” "네가 잘 못했으니 혼났지"하면서 더 혼이 나던 시대였다. 학교와 교사라는 존재에 대해 일정 수준의 신뢰와 권위가 사회적으로 공유되던 시대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대는 위험한 부분도 많았다. CCTV도 거의 없었고, 안전 시스템도 부족했다. 학교 시설이나 사회 분위기 역시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됐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배우며 살아왔다.
어쩌면 지금 학부모 세대가 자녀 문제에 민감한 이유 역시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일 수 있다.
학교에서 억울했던 경험, 교사에게 상처받았던 기억, 친구 관계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만큼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감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불안과 보호 본능이 학교 시스템 전체를 흔들 정도로 커질 때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소풍, 수학여행, 체험학습 같은 활동조차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혹시라도 다칠까, 민원이 들어올까, 인터넷 맘카페에 이름이 오르내릴까 걱정하며 정상적인 교육 활동까지 위축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장은 사라지고, 아이들이 함께 뛰노는 문화는 줄어들고 있다. 갈등을 조정하고 관계를 배우는 경험보다 ‘문제 없는 상태’ 자체가 목표가 돼 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유대와 연대, 충돌과 화해 속에서 성장한다.
학교 역시 완벽한 무균실일 수는 없다.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오해도 생기고, 때로는 상처도 받는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관계를 배우고,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갈등과 충격을 차단한 채 성장한 아이가 사회 속 작은 실패와 충돌까지 잘 견딜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주변을 돌아보면 오히려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한 사람들이 작은 갈등에도 쉽게 무너지거나 관계를 단절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반대로 적당한 충돌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버티는 힘을 배우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교 문제를 넘어 군대와 회사까지 부모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흐름마저 나타난다. 이등병 아들이 문제가 좀 생기면 사단장에게 바로 전화를 거는 시대가 됐다.
자녀의 문제에 부모가 직접 개입하고, 조직보다 ‘내 아이 관점’을 우선하는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그 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정말 더 강해지고 행복해지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교사도 완벽하지 않다.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교사들은 과거 세대와는 분명 다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대한다. 학생 인권과 안전 문제를 훨씬 민감하게 고민하고, 정서적 돌봄까지 요구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학교 역시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안전하게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공동체 시스템에 가깝다.
조금은 놓아줄 필요도 있다. 학교를 믿고, 교사를 믿고, 아이가 스스로 관계를 배우도록 기다려주는 여유 말이다.
완벽한 보호만으로는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 작은 상처와 갈등, 이해와 포용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교육이란 것도 결국 그런 과정을 함께 견디고 배워가는 일인지 모른다. 우리 미래세대를 이제는 학교에 좀 믿고 놓아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