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당신의 약 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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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당신의 약 이름은 무엇입니까?
  • 이슈밸리
  • 승인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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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이슈밸리=칼럼]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질환 환자분들의 경우 지속적으로 투약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종종 타지역에서 처방을 받으시던 분들이 당분간 근처에 머무는 동안 복용할 약이 떨어져 저희 병원에 내원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이미 오랫동안 드셔온 약이 있기때문에 본래 다니시던 병원을 다시 찾아가실 수 있을 때까지 복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복용하던 약만 그대로 처방해드리면 되기 때문에 진료에 크게 어려울 것이 없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선 이 분이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뇨약하고 혈압약을 먹고 있는데 약 이름은 모르겠고 하얗고 동그란 알약하고 길쭉하게 생긴 노란색 알약을 먹었다’라고 하시니 저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약을 가져오신 분들도 약 이름이 써 있는 봉투는 버리고 그냥 낱개로 약을 들고 오시는 경우가 많아서 이 약이 무슨 약인지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쑥색에 눈사람같이 생긴 약’처럼 아주 특징적인 모양새를 한 몇 가지 약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수백 가지 ‘하얗고 동그란 약’에서 이 환자분이 먹고 있는 약이 정확히 무엇인지 찾아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보니 처방받으시던 의원이나 약국에 전화해서 약 이름을 물어봐야만 하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다행히 다니시던 의원이나 약국이 어딘지 알고 계시고 연락이 닿으면 그나마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데 그것도 모르시는 경우가 허다해서 약 검색 사이트에서 약의 모양새나 색깔 같은 것을 입력하여 약 이름을 찾아내는 수고까지 해야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딱 보면 이게 무슨 약이고 용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신 건지 당뇨 고혈압약은 몇 가지 안될 테니까 그냥 알아서 의사들이 적절한 약을 골라 줄거라 생각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자기가 먹는 약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느 용량의 약인지 말씀해주시는 환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혈압, 당뇨, 고지혈증에 대한 약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거기에 동일한 성분의 카피약까지 수십 가지 씩 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약들을 서로 두세 가지 성분씩 조합해서 한 알로 만들어 놓은 약들까지 있어서 같은 이름의 약에도 여러 가지 용량의 조합으로 약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보니 그저 약 이름뿐 아니라 그 약이 어떤 성분의 어떤 용량의 조합인지 까지도 중요한 약 선택의 요소가 됩니다.
 
 제가 뭐 약 이름이 무엇인지 찾는 게 귀찮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약을 복용 하는지 찾는 시간이 진료하고 처방 내는 시간보다 더 많이 걸린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가던 병원만 간다면 약 이름이 무엇인지, 용량이 어떻게 되는 것까지 알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마는 만성 질환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그래도 자기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용량이 무엇인지를 알아두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기억하기 어려우시다면 핸드폰으로 약통의 겉표지나 약 봉투라도 찍어두시면 좋겠습니다. 이는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질환에 대한 관심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만성 질환 치료의 99%는 환자의 역할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가 얼마나 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느냐가 치료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냥 의사가 약을 주니까 수동적으로 먹는 것보다 이 약이 무슨 약인지 용량은 어떻게 되는지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훨씬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실 것임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이 명확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오셨던 환자분인데 오자마자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5년 전부터 엑스포지 5/160을 복용하고 있었고 혈압조절이 잘 되고 있다고 2개월 전부터 엑스포지 5/80으로 용량을 낮춰주셨습니다. 그 뒤로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고 여기 출장 
나와 있는 동안 혈압약이 떨어져 방문했습니다.’
 
별것 아닌 얘기지만 받아 적으면 그대로 의무기록이 될 만큼 명확하게 하시는 말씀에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먹는 약 하나만 잘 알고 있어도 의사들과의 의사소통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는 결국 자신의 만성 질환 관리에 도움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내가 먹고 있는 약 이름 하나 기억하는 일은 작은 수고이지만 큰 건강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소소한 건강관리 팁 하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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