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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투머치토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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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투머치토커는 없다”
  • 이슈밸리
  • 승인 2021.0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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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칼럼] 60대 남성분이었습니다.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르는 생활습관교정을 위해 얘기를 나누는 중에 그분에게 제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음식을 짜게 드시는 편입니까?”
이는 어느 고혈압 환자분들에게나 묻게 되는 특별할 것도 없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환자분이 실제로 저에게 하셨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아 제가 음식을 짜게 먹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어릴 때 저희 어머니가 해주시던 김치에 입맛이 들어서 그런지 쉽게 입맛이 바뀌지 않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시집오시기 전까지는 김치를 그렇게 담그지 않으셨다는데 강원도로 시집오시면서 변하셨다고 그래요. 

강원도 김치가 워낙 짜지 않습니까? 제가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생각해보면 강원도 음식에는 참 특이한 것도 많고 지금도 그 시절에 먹던 음식들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어릴 때 먹었던 강원도 간식 얘기는 중략)....김치 담그는 법도 특이해서 저희 어머니가 시집오셔서 김치 담그는 일뿐 아니라 이것저것 고생이 많으셨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집살이에 김치 담그는 것부터 사사건건 시어머니로부터 간섭이 심하셨고 그 시대의 며느리들이 다 그렇게 사셨겠지만서도.....저희 아버지가 잘하셨어야 하는데 그런게  뭐 다 지금 생각이지 그 당시에는 그런 게 뭐 어디 있습니까.,,,저희 아버지도 젊어서 하신 고생들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

 저는 단지 음식을 짜게 드시느냐고 한마디 질문했을 뿐인데 강원도의 음식 문화부터 한 가족의 역사까지 이어지는 대서사 앞에서 대체 이를 어디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난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환자를 보는 대부분 의사들은 이렇게 한없이 길어지는 환자분의 얘기를 어디서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던 순간들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셨을 것입니다. 

 의사는 학생 때부터 필요한 말을 명확한 언어로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고 필요한 말만 듣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수련 받을 때부터 교수님 앞에서 환자에 대해 발표해야할 일이 많은데 교수님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쓸데없는 정보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었기에 환자 치료에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 의사들이 진료현장에서 본질에서 벗어난 대화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정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나라 진료 환경을 생각하면 의사들은 더욱 경제적인 대화를 선호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의사 앞에 있는 환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고 그 말을 차근차근 들어주는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필요한 정보만 주고받는 것이 효율적인 진료인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 선별하여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모든 환자가 갖출 수는 없기에 환자는 최대한 많은 것을 의사에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불균형 속에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대화를 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항상 의사는 환자들이 쓸데 없는 말로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불만이고 환자는 의사가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만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의사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점점 쌓여갈수록 느끼는 바는 환자들이 하는 말 중에는 버릴 얘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강원도 음식문화나 가정사가 고혈압 관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 같지만 그러한 얘기들도 결국에 환자를 이해하고 병을 치료하는데 전혀 쓸데 없는 얘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진료하다가 환자들이 지나가면서 했던 ‘쓸데 없는 얘기’들이 그 환자의 감춰져있던 암이나 정신과적 질환을 나타냈던 중요한 얘기였음을 나중에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의 의사와 환자 간의 만남도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입니다. 우리 일상에서의 대화도 정해진 주제와 본질적인 내용만을 주고받는 대화만으로는 서로를 알아가는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도 ‘투머치토커’라는 것은 없습니다. 의사든 환자든 그 순간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 간의 만남에는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이상적인 환경의 변화는 의사나 환자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올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의사를 만나는 환자도 하고 싶은 말과 정보를 조금 정리해서 내원하시고 의사도 최대한 어떠한 얘기든 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두가 만족스러운 대화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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