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슬기로운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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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슬기로운 의사’
  • 이슈밸리
  • 승인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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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살아가는 의사로 바라봐 주시길

※ 이슈밸리는 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의 칼럼을 정기 연재합니다. 이동주 원장은 탁월한 인사이트와 필력으로 이슈밸리 독자 여러분의 의학적 궁금증을 풀어 드릴 것입니다.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슈밸리=이동주 칼럼] 아내와 딸이 너무 재밌게 드라마를 보고 있기에 무슨 드라마인가 싶어 같이 앉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TV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면서 보던 딸이 휙 뒤돌아보며 “아빠도 저랬어?”라며 가리키는 그 드라마 속 장면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저의 대학 시절의 모습이었습니다. 

저건 분명 잘 아는 의사가 옆에서 얘기해준 것이 분명하다 싶을 정도로 잘 살려낸 의사들의 어린 시절과 병원 내에서의 관계들, 일상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저 또한 아내와 딸처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한참 빠져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다 제 주변의 의대 시절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극 중 익준(조정석 역)의 예과 시절 머리스타일을 보면서 지금은 인천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의대동기 OOO가 생각났고 채송화(전미도 역)를 보면서 대전에서 산부인과 하는 OOO누나가 생각났습니다. 

그 외에도 등장인물들 모두 의대생 시절 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드라마는 다른 의학 드라마하고는 달리 의사들의 어린 시절과 일상에 주목해 주었다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의사들의 이야기가 마치 이웃 주민의 이야기처럼 다가오게 해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들에게도 대학시절이 있었고 병원 밖에서는 똑같은 생활인으로서 비슷한 고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함에도 그것을 일깨워 준 드라마에 느껴졌던 저의 고마움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지극히 당연하다 싶은 의사들의 ‘평범함’은 제게는 그렇게 평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평소에 의사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평범하지가 않다고 느낀 순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이 병원과 가까워 걸어서 출퇴근하는데 가끔 길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운동화에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제 모습에 깜짝 놀라고는 하십니다. 어떻게 원장님이 차를 안 타시고 걸어 다니시느냐는 겁니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의사의 이미지 속에는 강남에 살고 고급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대가 있었나 봅니다. 그분들에게는 같은 동네에 살고 누구에게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출퇴근을 하는 의사의 모습이 오히려 평범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 외에도 매우 평범한 일임에도 ‘의사도 그런 거 좋아해?’라든가 ‘의사도 그런 일 하느냐?’라는 질문들을 적지 않게 받아왔습니다. 이런 의사에 대한 기대야 뭐 그러려니 그냥 같이 웃고 넘길 수 있는 기대입니다만 꼭 그럴 수만도 없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제가 레지던트일 때 같은 동료 레지던트였던 친구의 담당 환자가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레지던트의 생활이 다들 그렇지만 그 레지던트 친구는 일주일 내내 집에 가지 못하다가 하루 시간을 내서 옷이라도 좀 갈아입겠다며 퇴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그 위독했던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겁니다. 

담당 레지던트였던 제 친구가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다른 당직 레지던트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환자의 상태가 돌아왔지만 그 다음날  그 환자의 보호자는 제 친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병동이 떠나가라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보호자의 말은 어떻게  환자가 위독한데 담당 레지던트가 집에 갈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의사가 집에 가서 환자가 위독해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 곁을 지켜야지 어떻게 집에 갈 수가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호자가 가지고 있는 의사에 대한 기대는 환자가 아프면 24시간 그 옆을 지키며 고심하는 의사의 모습뿐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보호자가 담당 레지던트에게 가지고 있는 그러한 기대가 무엇인지 이해를 할 수는 있었습니다만 그 레지던트도 그 보호자처럼 애틋한 가족이 있고 매일 가족을 만나고 보살필 권리가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보호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분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해주시고 ‘고맙습니다 챌린지’ 해주시는 것도 감사합니다만 사실 의사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평범한 것입니다. 의사들도 역시나 어느 직장인이나 필요한 것을 필요로 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수고한 만큼 적절하게 보상해주고 적절히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고 자기 맡은 일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연약한 부분은 공적인 투자를 해준다면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영웅이라고까지 추켜세워주지 않아도 열심히 일할 의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에 대한 존중은 결코 사명감을 부각하거나 감성적으로 이루어질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정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사명감이 넘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슈퍼맨도 아니고 성자도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야 할 이웃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나야 할 의사는 고대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상징되었던 의사보다 평범한 자기 일상을 또박또박 살아가는 ‘슬기로운 의사’들이어야 할 테니까요.

 

<이동주 원장 이력>

마포고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포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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