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윤대우 기자] 눈이 쌓여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은 전방 근무 병사들이다. 특히 강원도 동부·중부·서부 전방 지역은 한 번 눈이 오면 10~30cm 이상 쌓이는 일이 흔하다.
이때 제설은 단순한 환경 미화가 아니라, 이동로·진지·보급로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필수 작전이다. 병사들은 삽을 들고 보통 2~3시간씩 눈을 치운다고 한다.
문제는 그 대가가 고스란히 병사들의 허리와 무릎에 남는다는 점이다. 전방 병사들 사이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나면 허리와 무릎이 성하지 않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산악 지형을 오르내리는 경계 근무, 중량 장비를 멘 반복 이동, 혹한기 제설까지 겹치며 젊은 신체는 빠르게 소모된다. 이것이 과연 당연한 국가 안보의 비용일까.
◆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어도, ‘관절 파괴’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눈은 천재지변이라 막을 수 없지만 병사들의 허리와 무릎이 망가지는 구조까지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문제의 본질은 자연이 아니라 노동 구조다.
현재 전방 제설과 산악 경비는 여전히 사람의 관절과 근력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반복되는 삽질, 미끄러운 경사에서의 보행, 무거운 장비를 멘 상태에서의 장시간 이동은 허리와 무릎에 치명적인 부담을 준다.
이 부담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누적되고, 결국 만성 통증과 후유증으로 이어진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이런 구조를 문제로 인식했다. 제조·건설·물류 분야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보조 장치와 착용형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전방은 오히려 그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가장 늦게 보호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 예산 때문일까.
◆ ‘완전체 로봇’보다 ‘부분 로봇’ 절실
로봇을 이야기하면 흔히 인간을 닮은 완전체 AI 로봇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 전방에 필요한 것은 그런 미래형 상상이 아니다. 가장 시급하고,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빨리 효과를 낼 수 있는 착용형 부분 로봇이다.
허리와 무릎을 보조해 하중을 분산시키고, 눈을 밀거나 삽질을 할 때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여주는 장치다. 작전이나 제설 작업 시에만 착용하고, 평시에는 분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병사를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병사의 신체를 보호하는 장비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해외에서 검증되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 현장에서는 작업자의 피로와 부상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 착용형 로봇(엑소스켈레톤)을 실제 생산 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미군 역시 전투 병사가 아닌 군수·공병·하역·정비 분야부터 착용형 로봇을 시험·도입해 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허리와 무릎이 무너지면 전투력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전방은 ‘로봇 실험실’이 아니라, 가장 설득력 있는 첫 적용지다
전방 제설과 산악 경비는 착용형 로봇이 효과를 증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다. 임무가 명확하고, 작업 강도가 높으며, 보호 효과가 수치로 측정 가능하다.
허리·무릎 보조 로봇이 도입되면 제설 시간, 피로 누적도, 부상 발생률, 전력 공백 기간이 모두 데이터로 남는다. 이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전투력 유지와 비용 절감의 문제다.
더 중요한 점은 확장성이다. 전방에서 검증된 기술은 곧바로 공병, 재난 대응, 건설, 물류, 제조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나아가 보행이 불편한 환자와 고령자를 위한 의료·재활 분야로도 이어진다. 즉 전방은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부분 로봇 산업 전체를 여는 출발점이 된다.
◆ 산업 현장 ‘허리·무릎 보호 로봇’ 실제 적용 사례
착용형 부분 로봇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조용히 검증을 마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자동차·조선·물류 산업이다. 반복적인 중량 작업과 불안정한 자세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이 빈번한 분야에서, 허리와 무릎을 보조하는 엑소스켈레톤은 작업자 피로도 감소와 부상 예방이라는 명확한 효과를 보여 왔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은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을 실제 생산 라인에 적용하며, 어깨·허리 부담을 줄이는 장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다. 이는 로봇이 더 이상 실험실 기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착용하고 바로 성과를 내는 장비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방산 분야에서는 LIG Nex1이 하체 엑소스켈레톤을 미래전·공병·군수 분야로 확장 가능한 기술로 공개하며, 병사의 기동성과 신체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전방 제설·산악 경계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
◆ 시장은 이미 열리고 있다… 관건은 ‘누가 먼저 표준을 잡느냐’
글로벌 착용형 로봇(엑소스켈레톤) 시장은 아직 폭발적인 규모는 아니지만, 성장 속도는 빠르다. 의료·재활 중심으로 형성됐던 시장이 이제 산업·군수·공공 안전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착용형 로봇 시장은 2020년대 후반까지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률이 예상된다. 특히 산업 안전과 군수 물류, 공병·재난 대응 분야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세그먼트로 꼽힌다.
중요한 점은 이 시장이 단순 완제품 경쟁이 아니라 ‘표준 경쟁’이라는 사실이다. 관절 구동 방식, 착용 편의성, 혹한·혹서 환경 대응, 배터리 안전성, 고장 시 수동 전환 구조 등이 사실상의 표준이 된다. 전방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먼저 채택된 기술은 곧 글로벌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국방·로봇공학 융합 분야 전문가는 “전방 제설과 산악 경계는 단순한 노무 문제가 아니라 전투력 유지의 문제다. 병사의 허리와 무릎이 먼저 무너지면 그 어떤 첨단 무기도 의미가 없다”면서 “완전체 로봇을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병사의 신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착용형 부분 로봇부터 전방에 투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