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건강보험 되는 탈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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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건강보험 되는 탈모약
  • 이슈밸리
  • 승인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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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슈밸리=칼럼] 발모제 처방은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일반적인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원형 탈모와 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일 경우에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만 일반적인 탈모의 경우는 질환을 치료한다기보다 외모의 개선을 위한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속눈썹이 각막을 찌르는 안검내반증을 치료하기 위한 쌍꺼풀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만 미용 목적의 쌍꺼풀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러한 발모제를 건강보험으로 처방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발모제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와 동일한 성분이라는 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 라는 성분의 약은 5mg짜리 알약으로 제조되어 ‘프로스카’라는 상품명으로 전립선 비대 치료를 위해 쓰이고 있지만, 동일한 성분의 약이 1mg짜리 알약으로 제조되어 ‘프로페시아’라는 상품명으로 탈모 치료를 위해서도 쓰이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5mg짜리 프로스카가 1mg짜리 프로페시아보다 5배 비쌀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5mg짜리 프로스카는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한 약이므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1mg짜리 프로페시아보다 훨씬 싸게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발모제 처방을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처방받는 방법이 무엇인지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처방받으실 때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된다는 것이 좀 기분 나쁘기는 하겠지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잔뇨감이 있다던가 소변이 가늘게 나온다던가 자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자주 깬다던가 하는 증상이 있다면 진단에 있어서 특별한 검사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탈모가 시작되는 중년 남성들에게 위와 같은 증상들은 매우 흔하기때문에, 전립선 비대증 증상이 있는 환자 중 탈모가 있는 환자에게는 프로스카를 처방하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본인에게 전립선 비대증 증상이 없더라도 위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며 전립선 비대증 환자로 보이기 위해 노력(?)만 하시면 어렵지 않게 발모제와 동일한 성분의 약을 건강보험을 적용해서 싸게 복용하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는 5mg 짜리이므로 4분의 1씩 쪼개 먹는다면 더욱 저렴하게 복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되도록이면 저렴하게 치료를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니 이러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환자분들에게 대놓고 말을 하지는 못해도 은근히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기도 합니다. 

발모제를 받으러 오신 분한테 뜬금없이 ‘소변 보실 때 문제는 없으신가요?’라고 물으면 눈치 없이 ‘그럼요, 머리털은 빠지지만 아직 오줌발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시는 환자 분은 어쩔 수 없겠지만 안그래도 전립선에 문제가 있어 불편했다고 말씀하시면 전립선 문제도 해결하고 탈모 문제도 해결하고 비용까지도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 후보가 발모제까지 건강보험 적용 시켜준다는 공약을 들고 나오니 많은 탈모인들이 환호했고 다른 후보 진영에서는 자기들이 먼저 하려 했던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현상을 보고 있자니 제 입장에서는 이제 탈모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소변 증상이 어떠냐는 뜬금없는 질문 같은 것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간단하게 건강보험 급여화가 추진될 수 있는 문제에 왜 나는 여태까지 그토록 까다롭게 굴어왔을까 하는 허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이 뭔 말을 못하겠냐 싶다가도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서 보험 기준에 맞지 않는 처방을 하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써왔던가 싶었습니다. 

그것은 건강 보험재정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 모은 돈이기 때문이었고 이를 사용함에 있어 기준과 제한이 없으면 금방 동이 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꼭 필요한 치료에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돈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언제 어떻게 처방해야 하는지 아는 것만도 골치 아픈데 약마다 급여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 봐가며 진료했었던 것이고, 급여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처방을 하면 환자가 구매한 약값까지도 모두 물어내야하는 하는 불합리한 조치까지도 감수하면서 진료해왔던 것입니다. 
 
탈모가 질병이냐 아니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탈모로 인한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 불편함에 공감해야 할 정치인들의 역할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이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하는가(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를 판단하는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하지 않은지 지금도 수많은 약과 의료 기술들이 건강보험에 적용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고 어려운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과정을 마치 통치자의 의지만 있으면 모두 생략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이러한 공약들이 현장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자고 매일 매일 건강보험 심사평가 기준과 씨름하고 삭감통지서로 골치 아파했던 의사들에게는 깊은 허탈함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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