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전교1등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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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전교1등은 잘못이 없다”
  • 이슈밸리
  • 승인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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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공부의 재능이 필요한 직업
사회의 의사로서 도덕적 진료 필요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칼럼] 요즘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특히 ‘전교1등 의사’라는 말이 불거지면서 ‘전교 1등 의사’ 보다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들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립니다. 

많은 사람은 공부 잘하는 의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의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면 좋을지에 대해서 그래도 현직 의사로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 어떤 사람이 의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당연한 얘기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의사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근데 문제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나라에는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 되었건 의대생의 자리는 한정되어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 이를 선발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의대생을 선발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현재 우리 사회는 성적순으로 의대생을 뽑고 있습니다. 음대생을 선발할 때는 음악적 재능을 평가하고 체대생을 뽑을 때 운동 능력을 평가하듯이 의대생을 비롯해 대부분 학과는 공부하는 능력을 가지고 학생을 선발합니다. 

공부하는 능력은 시험 성적, 내신 성적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있기 때문에 학생 선발의 기준으로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하는 능력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종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능력도 다른 재능들처럼 여러 재능 중 한 가지일 뿐입니다. 그나마 다른 재능들보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은 맞지만 공부도 어느 정도 타고나는 면이 있어야 잘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재능이 있으며 그 중의 하나인 공부 하나 잘했다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특히나 성인이 되어서까지 고등학교 때 성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유치한 일입니다.
 
◈ 의대생을 공부하는 능력으로 선발하는 것에 대해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의사는 공감을 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의사는 공부의 재능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전교 1등만 의사를 해야 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겠습니다만 의사라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공부의 재능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현재 전국의 전교 1등만 의사가 되는 현실은 그만큼 의사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지 의대생을 선발하는데 공부의 재능을 평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공부하는데 재능이 있는 학생이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우리 몸을 맡겨도 될만한 의사를 양성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문제입니다. 공부는 잘하는데 영 인성이 글러 먹은 듯한 의사들이 현실에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의사가 되는데 있어서 성적이 아니라 인성적인 측면도 봐야한다고 말하는 바가 이해가 됩니다. 

시험 성적 좋은 학생만이 아니라 희생정신, 봉사정신 같은 것들이 갖춰진 인격적인 학생을 의대생으로 뽑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의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에 대한 희생정신, 봉사정신을 갖춰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그런 학생들을 의대생으로 선발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봉사정신 희생정신 같은 인격적인 면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면 너무나 좋겠습니다만 실상 우리에게는 그러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추천, 적성검사, 인성검사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을 평가하는 방법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의대생 선발에만 쓸 것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성직자, 교사를 선발하는데 먼저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전교 1등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만큼 그 학생은 의사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강했던 것이고 성실하게 공부했고 거기에 공부의 재능도 있는 학생이었기에 전교 1등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열망과 성실함과 재능은 훌륭한 의사가 되는데 좋은 바탕이 될 것입니다. 다만 거기에 희생정신 봉사정신 같은 인성적인 면까지 갖춰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것까지 평가하여 의사가 될 사람을 선발하는 방법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할 수만 있다면 인격적인 사람만 뽑아서 의사로 만들고 싶고 정의로운 사람만 선발해서 법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공부하는 능력으로 의대생도 선발하고 법대생도 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도덕성과 인격의 사람들이 의사도 되고 법관도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이러한 현실 때문이 아닐까요? 평범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 의사가 되더라도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의사로 만들어가고, 그들이 대단한 도덕성과 희생정신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이 사회의 의사로서 도덕적인 진료를 하는 것이 자기 가족을 위해, 자기 이익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의 역할일 것입니다.

 저 또한 공부 하나 잘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많은 결함이 있는 사람이기에 과연 내가 많은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보듬어줘야 할 의사라는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가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도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정의롭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조차도 그러한 이상적인 진료를 하며 생존하기가 어려운 의료 제도와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인성이 훌륭한 의대생을 선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우리 사회가 저같이 평범한 사람의 봉사정신, 희생정신이 필요한 사회가 아니라 그저, 공부 하나 잘해서 의사가 된 사람도 이 사회에서 괜찮은 의사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갖춰진 사회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이슈밸리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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