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칼럼] 흉악범을 변론하는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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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칼럼] 흉악범을 변론하는 변호사들
  • 이슈밸리
  • 승인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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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칼럼] 평소에 미성년자를 성추행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만화가게 여종업원을 성폭행하기까지 하였던 만화가게 사장이, 만화가게에 놀러온 10살 여자아이를 유인하여 성폭행 후 살해하였고, 만화가게 사장은 이러한 행위로 징역 25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법무법인 해마루 박재형 변호사
법무법인 해마루 박재형 변호사

이런 극악무도한 미성년자 강간살인범을 변호한 변호사는 돈에 미쳐 영혼을 판 악인으로 지탄받아야 할까요?

이 사건은 "춘천 강간살인 조작 사건"으로 불리는 유명한 사건으로,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최초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1차 재심 신청과 기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에 따른 재심권고, 2차 재심을 거쳐 고문에 의한 자백이 있었다는 점, 기타 증거들 또한 조작되었다는 점을 인정 받아 39년만에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춘천 강간살인 조작 사건"은 군사정부 시절 빨리 범인을 찾으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일선 경찰들이 무리한 수사를 하여 범인을 조작하고, 검사와 판사들 또한 이에 동조하였거나 사건을 주의 깊에 살펴보지 못해 발생한 일입니다.

권위주의 사회가 타파된 현재는 고문에 의한 사건조작 같은 극단적인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여론의 압박에 의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켜졌습니다.  

기자들은 수사기관의 발표와 간단한 조사만으로 피의자,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하는 기사를 내는 경우가 많고, 인터넷 여론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부터 피의자,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기관과 법원 또한 여론에 영향을 받아 유, 무죄를 판단하거나 형량을 정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의자,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거나, 범행 자체는 인정하더라도 참작할 만한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 이를 법률적으로 정리하여 주장해 줄 수 있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류는 누군가가 억울하게 처벌을 받거나, 자신의 행위에 비해 과한 처벌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피의자나 피고인을 돕기 위한 법률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하였습니다. 이에 현대 사법시스템은 형사사건에서 피의자 피고인에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호사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흉악범일수록 더욱 필요하기 때문에, 흉악범을 변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를 비난하는 것은 현대 사법제도의 근간을 부정하고 여론재판을 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최근 조수진 변호사가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 흉악범을 변론하였던 일이 문제되어 비난 여론이 커지자 결국 후보직에서 사퇴했는데, 이번 경우뿐만 아니라 변호사가 공직에 나가고자 할 때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조수진 변호사가 흉악범을 변론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변론의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거나, 흉악범을 변론하였으면서 스스로를 인권변호사라 칭한 것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수진 변호사가 변론 내용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사건 기록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형사재판에서의 변론은, 피고인이 죄를 모두 인정하고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비는 경우가 아닌 한, 본질적으로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로 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변호인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법정 밖에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여론전을 펼치는 등의 행위를 한다면 이는 정당한 변론의 범위를 넘어선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인이 법정 내에서 피고인의 주장을 정리하여 변론하였을 뿐이라면 비록 그와 같은 변론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변호인의 정당한 변론 범위 내의 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만약 변호인이 사회적 지탄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러한 행위가 변호사의 직업윤리에 반할 여지가 큽니다.

변호인의 변론이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가 될 여지가 있다면, 이는 변론의 비공개 등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수진 변호사의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변호사의 변론이 2차 가해라고 주장하는 측이 변호사의 법정에서의 변론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공개야말로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 모순적입니다.

한편, 조수진 변호사가 스스로를 ‘인권변호사’라 칭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변호사인 필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인권변호사’라 칭하는 변호사들을 보면 낮간지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흉악범의 혐의를 받는 형사 피의자, 피고인을 변론하는 것도 그들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변론하는 것을 ‘인권변호사’라 칭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문명국가의 사법시스템은 피의자, 피고인이 아무리 흉악범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거나, 행위에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변호사가 범죄혐의를 받는 자들을 변론하는 것은 변호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입니다. 변호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법정 밖에서 재판에 영향을 주기 위한 여론전을 펴는 등의 부당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닌 이상, 변호사가 흉악범을 변론하였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변론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되었다는 이유로도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변호사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후진적인 비난이 이제는 없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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