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시간이라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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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시간이라는 ‘의사’
  • 이슈밸리
  • 승인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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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사진=픽사베이)
청진기 (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칼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많은 병은 시간 앞에 사라집니다. 병을 치료하면서 정작 의사들이 개입해야 할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의사는 그저 시간이 하는 일들을 바라보고 예상하고 환자에게 해석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치료라는 행위는 그저 시간이 하는 일에 숟가락을 얻는 것일 뿐이라, 시간이 받아야 할 찬사가 내 것인 양 전해지는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물론 시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병을 발견하고 진행을 거스르는 일은 위대한 일이며 의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진단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시간으로부터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지나온 시간이 증상을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를 파악하면 많은 두려운 진단을 배제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의사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사람이 명의입니다. 시간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의사, 기다려야 할 때와 서둘러야 할 때를 냉철하게 구분할 줄 아는 의사가 명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사는 기다려보자는 말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당장 공격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기보다 시간의 판단에 기대보자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시간만으로도 많은 질병이 해결되고 당장에는 알 수 없는 진단이 시간이 지나면서 명확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치료와 진단을 위해 시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다려보자는 말은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위험합니다. 기다려보자는 말은 합리적일 수 있으나 100%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다려보자는 말이 99%로 맞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1%에 대한 두려움이 기다려보자는 말을 하기 어렵게 합니다. 내 가족이라면 기다려보자고 할 수 있는 일도, 내 가족이 아닌 환자에게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 기다려보자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환자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다려보자는 말은 듣는 이에게 무성의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말이 좋아 시간의 판단을 기다려보자는 것이지, 결국 듣는 환자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기다렸다가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느냐는 얘기까지 듣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의학적 판단은 얼마든지 교과서적인 판단, 합리적인 판단이라 말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환영받는 판단은 아니라는 것이 진료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더욱 명확해지는 결론입니다.

 세 번째로, 너무나 경제적입니다. 쉽게 말해 돈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따져보고 진찰해보고 결론적으로 기다려보자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을 때 진료비를 내지 않고 그냥 가시려는 환자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소화제라도 처방해서 처방전 한 장이라도 들려 보내면 별 말없이 진료비를 내시는 분들도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위험하기도 하고 환자들이 좋아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고심 끝에 내린 ‘기다려보자’는 의학적 판단에 대해 돈을 기꺼이 지불하시려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병원 운영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의사는 치료자이면서 병원을 책임지는 경영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점점 더 기다려보자는 판단은 아무리 옳은 판단이라 해도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친한 사람들이 저에게 의료 상담을 하는 경우는 이러한 위험성, 환자의 선호도, 경제성에 자유롭기 때문에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경우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에게 상담하는 많은 의료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다려보자는 말을 마음 편하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도 결국에는 너는 왜 맨날 기다려 보자고만 하느냐, 왜 괜찮다고만 하느냐, ‘쟤한테 물어 보지마. 맨날 괜찮다고 그래’ 그러더군요. 친한 사이니까 내가 기다려보자고 해서 안 괜찮았던 적 있느냐며 웃으며 다시 되물을 수라도 있지만, 일반적인 진료상황에서라면 아무리 명백하게 기다려볼만한 의료 문제라고 해도 기다려보자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최악의 경우부터 떠올려야 하는 진료,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시작하는 의료행위는 과연 어떻게 시작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머리가 아프면 무조건 MRI부터 찍고 허리가 아프면 무조건 수술부터 생각하고 작은 갑상선 결절에도 조직검사부터 말하는 의사가 더 성의 있어 보이고 더 나를 위해주는 것 같아 보이고 더 부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최고의 명의인 ‘시간’이 한 구석에서 우두커니 돌팔이 취급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현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셔야할 것은 기다리자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일차 진료 의사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러함에도 저 또한 한시가 급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접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예약까지 서둘러 잡아주는 환자도 있습니다.

모든 환자를 다 시간에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다리자는 말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어쩌다 하는 서두르자는 말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라는 의사가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모두에게 유익하고 그것은 어느 한 편의 노력이 아닌 환자와 의사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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