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스토리]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과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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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스토리]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과 '반도체'
  • 이슈밸리
  • 승인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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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출처=옛 경제투데이/강사완 기자)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윤대우 선임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태원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던 2014년 5월 10일, 그가 응급실로 가기 몇 시간 전, 필자는 이 회장 건강 관련 기사를 작성했다. 당시 삼성전자 출입 기자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요지는 이렇다. 2014년 1월 신년 하례식 이후 이 회장의 모습을 통 볼 수 없었고 삼성은 이 회장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두문불출(杜門不出)한 이 회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지대했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사진=삼성전자)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사진=삼성전자)

2013년, 2014년 신년 하례식에서 본 이 회장의 거동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이 회장 건강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나오던 터였다. 필자는 이런 상황을 종합 취재해, 당일 이 회장 건강 관련 기사를 완성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 건강 이상설, 현실인가?”(가칭)

기사가 포털에 송고되기 직전, 담당 데스크(현재 모 언론 사장)는 심각한 고민을 하더니, 일단 보류하자고 했다. 기사 내용은 타당하고 객관성이 있으나 보도에 대한 파장이 클 것을 우려한 것이다.  

기사가 킬(kill, 죽는다)되고 불과 3시간 후 이 회장은 자택에서 갑자기 쓰러져 인근 순천향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는 속보가 떴다. 이 회장은 약 6년 5개월간 투병 생활을 끝으로 지난 2020년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선배(담당 데스크)는 당시를 회상할 때 ‘특종’을 놓쳤다면서 긴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이 회장이 이태원 자택에서 쓰러지기 약 1여 년 전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삼성그룹 신년 하례식이 있었다. 당시 이 회장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건강 이야기는 아니다. 

2012~2014년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갤럭시S로 최고 호황을 누릴 때였다. 2013년 1월 신년 하례식은 이를 반영하듯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이 회장이 신라호텔 입구에 도착해 행사를 마치고 떠날 때까지, 온 매스컴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 취재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이 회장은 평소 기자가 질문을 하면 잠시 멈춰 자신의 입장을 짧게 밝혔지만, 이날은 기자 질문에 몸을 돌려 기자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겨왔다. 이례적이었다. 옆에 있던 이재용, 이부진 남매는 당황했다. 

기자가 질문을 했다. "올해 신경영 선포된 지 20주년 됐는데 특별히 주안점 두는 게 있나요?" 이 회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항상 열심히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앞을 보고"

기자가 또 다른 질문을 한다. “올해 투자계획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이 회장은 “그런 것까지 난 자세히 몰라요. 해줄 수 있으면 해야 한다.”  

기자가 다른 질문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했는데 사회를 위해 어떤 것을 하실 계획인가요".  이 회장은 "사회적 책임이란 게 항상 따르는 거에요. 기업을 하는 이상" 

이 장면은 당시 함께 동행했던 강사완 카메라 기자(현 KBS)가 촬영했다. 유튜브 조회수 11만 명을 기록한 이 영상은 이 회장의 생전 공식 석상에서의 모습을 가장 근거리에서 촬영한 영상이 됐다. 이 회장의 친근함, 온화함, 카리스마를 함축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다.
 
이건희 회장의 최대 업적은 삼성의 반도체 초석을 만든 것이다. 이 회장은 1974년 선친인 이병철 회장에게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자’고 제안했다. 

한국반도체는 1974년 1월 설립된 회사로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 등을 개발, 생산했다.  

삼성전자가 출범한 지 5년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 흑백 TV에 들어가는 부품은 모조리 일본에서 사 조립할 때였다. ‘반도체’라는 이름 석자가 생소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삼성의 셋째 아들 이건희 동양방송(TBC)이사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자고 하니, 삼성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임원들은 강경하게 반대했다. “말이 되는 소리냐” “회사 말아 먹자는 소리냐”라고 비난했다. 

선친 이병철 회장은 임원들의 여론을 이유로 한국반도체 인수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사비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 회장은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의 내국인 몫 지분의 50%를 인수했고, 1977년 12월 30일 잔여 지분 50%를 추가로 인수했다.

모두가 반대했던 ‘한국반도체 인수’.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앞으로 반도체 세상이 올 것이란 것을 미리 알고 선제 대응했다. 이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신경영 선포로 삼성전자를 지금의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조 원이었던 삼성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만 놓고 보더라도 2022년 8월 21일 기준 363조원으로 363배 증가했다.

이 회장은 사물이나 현상을 환히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멀리, 깊이 몇 수를 읽을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제 이러한 통찰력이 그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이어지길 바란다. 

거대한 삼성전자를 이끌려면 이러한 ‘통찰력’은 CEO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통찰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재용 부회장도 내심 아버지의 재산보다 이러한 통찰력의 유산을 더 바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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