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변호사 칼럼] 어느 전직 대법관의 돈벌이와 사법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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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변호사 칼럼] 어느 전직 대법관의 돈벌이와 사법신뢰
  • 이슈밸리
  • 승인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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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밸리=칼럼] "안타깝게도 사실 여부를 떠나 적지 않은 국민들이 유전무죄·무전유죄 현상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사회적 풍토 아래에서 형사사건에 관한 성공보수약정은 그동안 형사사법의 공정성·염결성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증폭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명한 법언(法諺)처럼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큼이나 사회구성원들이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법제도나 국가기관도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와 공감이라는 기반 위에 서지 않는다면 존립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해마루 박재형 변호사
법무법인 해마루 박재형 변호사

위 문구는, 권순일 전 대법관이 2015년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형사사건에 관한 성공보수 약정 무효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성공보수 약정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붙인 보충의견의 일부입니다.

성공보수 약정이란, 의뢰인이 변호사와 사건 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착수금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의뢰인이 원하는 판결, 예를 들어 무죄 판결이 선고된다거나, 유죄 판결이 선고되어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 일정 금액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입니다. 

성공보수 약정은 변호사와 의뢰인 쌍방의 이익에 부합되는 측면이 있기에, 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는 형사사건의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성공보수 약정이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변호사 업무를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일하는 일종의 서비스업으로 보면, 성공보수 약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 의뢰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을 중요시한다면 성공보수 약정은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성공보수 약정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변호사 업무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될 문제입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자신이 주심으로 관여한 대법원 판결의 결론과 보충의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사회구성원들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 성공보수 약정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을 매우 강조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에 대해 여러 비판들이 있지만,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을 강조한 권순일 전 대법관의 견해는 충분히 존중받을 만 합니다.

그런데 최근 권순일 전 대법관이 퇴직 후 자신이 대법관 시절 담당하였던 사건과 관련되었던 화천대유라는 회사로부터 매월 1,500만 원이라는 고액의 고문료를 받아 온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권순일 전 대법권이 일종의 사후 뇌물로 위 고액의 고문료를 받았다는 점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나 명확한 정황이 없으므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 마치 사건 처리결과의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고 비난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다만 권순일 전 대법관은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은 채 고문료 명목으로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큰 고액의 고문료를 받은 행위 자체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사법부의 정점인 대법관까지 역임한 분이므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 탁월한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화천대유가 권순일 전 대법관의 법률지식을 활용하는 대가로 월 1,500만 원을 주었을리는 없습니다.

화천대유가 사업에 관한 법률자문이 필요하였다면 재개발, 재건축 등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이나, 대형로펌과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더 적은 금액에 보다 전문적인 조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천대유가 전문 로펌이 아닌 권순일 대법관과 고문계약을 체결하고 고액의 고문료를 지급한 이유는, 사업분야의 법률 조력이 아니라 권순일 전 대법관의 후배 법관들에 대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권순일 대법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이를 인지하고 고문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직 후 변호사 등록조차 하지 않아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할 수도 없기에 정식 선임도 하지 않은 채 비공식적으로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태는 자신이 성공보수 약정 무효를 판결하면서 제시한 의견에 정면으로 반합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의 고액 고문료 수수는 그의 표현을 빌면, “안타깝게도 사실 여부를 떠나 적지 않은 국민들이 유전무죄·무전유죄 현상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사회적 풍토”를 조장하는 것이고, “사회구성원들이 부정과 비리가 실현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결국 “사법제도나 국가기관에 대한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훼손하여 그 존립근거를 상실시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일반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와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을 강조하였던 권순일 전 대법관이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은 채 후배 법관들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를 기대하는 고문사로부터 고액의 고문료를 받아 왔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단언컨대, 평범한 변호사들이 형사사건에서 받는 500만 원, 1,000만 원의 성공보수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동이 일반 국민들의 사법신뢰를 훨씬 더 훼손하였을 것이기에, 그의 처신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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