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자연인이 부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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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자연인이 부러운 날
  • 이슈밸리
  • 승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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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칼럼]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어느덧 빠져서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는 다들 자연인처럼 살아가고 싶은 마음들이 있는지 저처럼 이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집 샤워기 한번 고치려고 나섰다가 온 집안이 단수되고 수습이 안돼서 밤 9시에 결국 동네 철물점 아저씨를 호출해야만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자연인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는 합니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몇 가지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꼭 산으로 약초를 캐러가는 장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인은 진행자와 함께 산을 오르며 이것저것 채취하면서 약초에 대한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말해줍니다. 

이를테면 보기에는 그냥 흔한 풀같은데 ‘이것은 항암효과가 있고 간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OOO이라는 귀한 약초다’라고 자연인이 얘기하면 진행자는 신기해하며 그 약초를 그 자리에서 받아먹기도 하고 자연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며 경의를 표하기도 합니다. 

보다보면 자연인은 해결하지 못할 질환이 무엇일까 싶을 정도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직업인 제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자연인은 수많은 질환을 약초로 다스립니다. 산에 들어온 이후로 먹던 약들을 다 끊었다는 자연인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다보면 자연인으로 살면서 스스로 건강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점을 강조하다보니 만들어진 설정이겠습니다만 그냥 재미있는 설정으로만 여기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로서 무언가 효과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자연인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병에 효과가 있는 치료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들이는 공을 생각하면 당뇨도 치료되고 간기능도 좋아지고 중풍도 예방되는 약초라는 자연인의 한마디에 모두가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수많은 돈과 노력으로 효과를 증명하고 심지어 의료보험까지 적용해주는 당뇨약, 혈압약은 거부하면서 자연인이 먹는다는 약초 달인 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분을 우리가 진료현장에서 만날 수 없다면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진료현장에서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몸에 좋다는 것에 집착하면서 몸에 좋다는 말에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어느 장어집을 가 봐도 메뉴판 옆에 장어의 효능이 써 있지 않은 곳이 없고 한방 백숙집에 써 있는대로라면 백숙만 먹어도 모든 병이 다 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몸에 좋은 것을 찾는 일에 부지런하고 너그러운 우리 민족의 마음들이 과학적인 치료에도 열려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사들의 말도 자연인의 말처럼만 믿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코로나 백신 효과에 대해 강조를 해도 ‘백신 맞아도 소용없다더라’,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더라’며 거부하시는 환자분들을 설득하는 일에 날로 지쳐가다보니 더욱 자연인이 부러워져만 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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