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 브래드 피트 곁의 또 다른 참전용사…‘하트 오브 비스트’가 남긴 울림
알래스카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군견의 생존기 익숙한 위기 속에서도 마음을 붙드는 전우의 눈빛 전쟁이 동물에게 남긴 상처까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
[이슈밸리=윤대우 기자] 영화 ‘하트 오브 비스트’는 전직 육군 특수부대원 제임스와 은퇴한 셰퍼드 군견 오딘의 생존 드라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제임스에게 오딘은 함께 전장을 누빈 전우다. 평온을 찾아 머물던 알래스카에서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으면서 둘의 시간은 다시 생사를 건 싸움으로 바뀐다.
광활한 산과 숲은 바라볼 때와 그 안에 고립됐을 때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던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는 추위와 부상, 야생동물의 위협이 들어선다. 영화는 이 거대한 자연 속에 사람 하나와 개 한 마리를 남겨놓는다.
‘레버넌트’를 떠올리게 하는 야생의 위협
영화를 보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떠오른다. ‘타이타닉’의 남자 주인공으로 익숙한 그가 곰의 습격을 받고 혹독한 자연을 헤쳐 나가던 작품이다. 19세기 생존극의 긴장감을 현대의 퇴역 군인과 군견 이야기로 옮겨온 듯한 인상을 준다.
거친 날씨를 만나고, 곰과 늑대의 위협에 맞닥뜨리고,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하나를 넘어서면 또 다른 위험이 기다린다. 관객이 숨을 돌릴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 구성이다.
위기를 쌓아가는 방식은 익숙하다. 다음에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두 존재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구하려 할지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위험이 연달아 등장하다 보니 장면에 따라서는 시련을 지나치게 몰아붙인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도 쉽게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제임스가 오딘을 이끌다가 어느 순간 오딘이 제임스를 움직이게 한다. 도움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바뀌면서, 둘이 함께 살아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차곡차곡 쌓인다.
‘저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오딘의 눈빛과 피트의 호흡
가장 자주 감탄하게 되는 존재는 셰퍼드 군견 오딘이다. 제임스를 바라보는 눈빛과 작은 신호에 반응하는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감독이 원하는 순간에 어떻게 저런 표정과 행동을 끌어냈을까. 피트와 얼마나 오래 지냈기에 저만큼 익숙한 관계로 보일까. 영화를 보는 동안 촬영 과정이 궁금해진다.
실제로는 한 마리의 개가 모든 장면을 소화한 것이 아니다. 오딘 역은 우버와 그 자견 세 마리가 나눠 맡았다.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과 달리고 물을 건너는 장면 등에 각자의 특기를 살렸다. 화면 속 하나의 오딘 뒤에는 서로 닮은 네 마리의 개와 이를 연결한 제작진의 작업이 있었던 셈이다.
동물 연기 담당 앤드루 심프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피트가 개들과 함께 준비한 시간은 촬영 전 약 3주였다. 피트는 우버가 머무는 공간에 함께 앉아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전화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화면에서 오래된 전우처럼 느껴지는 관계는 그런 일상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다.
피트의 연기도 탄탄하다. 잘생기고 멋진 스타의 모습보다 지치고 다친 몸으로 한 걸음씩 버티는 사람의 얼굴이 먼저 들어온다. 상대를 향한 걱정과 애착을 큰 대사 없이 전달하고, 오딘의 움직임을 받아주면서 장면의 감정을 이어간다.
물에 젖고 거친 지형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 촬영의 수고도 짐작하게 된다. 실제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피트가 물속에 설치한 항공기 세트까지 잠수해 직접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화면에 잡힌 얼굴과 몸의 움직임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군견의 상처
이 영화에서 오래 남는 것은 군견 역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시선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의 불안과 고통은 여러 작품을 통해 접해왔다. 그러나 그 곁에서 같은 폭음과 위험을 겪은 개의 이후 삶까지 생각해본 관객은 얼마나 될까. 오딘은 명령에 충실했던 군견이면서, 전장이 끝난 뒤에도 보살핌이 필요한 생명으로 그려진다.
잠든 오딘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 점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전장을 떠났다고 해서 그곳에서 겪은 일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현실에서도 군견의 외상후 스트레스는 다뤄지고 있다. 미 국방부 공동외상체계의 진료지침은 폭발과 총격 등에 노출된 군견에게 외상후 스트레스가 나타날 수 있으며, 수면 변화 등이 동반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영화 속 묘사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군견을 넘어 경찰견과 인명구조견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위해 위험한 현장에 들어갔던 동물들이 임무를 마친 뒤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그들의 몸과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살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반려견을 기르는 관객이라면 마음이 더 크게 흔들릴 만하다. 오딘이 제임스를 바라보는 얼굴에서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반려견의 눈빛을 발견할 수도 있다. 위태로운 순간마다 마음을 졸이고, 서로에게 다가서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다.
익숙한 생존 이야기라는 점만으로 이 영화의 감동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함께 위험을 겪은 두 존재가 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 그 익숙함을 넘어선다.
동물과 사람이 오랜 세월을 함께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에는 배우의 연기만으로 채울 수 없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네 마리의 개와 피트, 훈련사와 스태프가 함께 만든 오딘의 얼굴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다. 그 눈빛을 통해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또 다른 전우의 삶을 보게 된다. 강력 추천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