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고속철 추돌 68명 사망…정지 신호에도 운행 재개
한국인 탑승객 10명 중 2명 부상…시스템 장애 이후 관제 지시 경위 조사
[이슈밸리=임정은 기자] 스페인에서 정차 중인 고속열차를 뒤따르던 열차가 들이받아 최소 68명이 숨졌다. 사고 직전 신호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했는데도 운행 재개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파악되면서 관제센터의 판단과 비상시 안전 절차가 핵심 조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카스티야라만차 광역자치주 당국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마드리드 남쪽 톨레도주 우르다 인근에서 발생한 고속열차 추돌 사고의 사망자는 68명으로 집계됐다. 구조대가 파손된 객차를 수색하고 있어 인명 피해가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2013년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열차 탈선 참사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철도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는 이날 오전 9시 직전 마드리드와 남부 안달루시아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노선에서 발생했다. 국영 철도회사 렌페의 AVE 열차가 같은 방향으로 운행하다 정차한 민영 철도회사 이리오 열차의 후미를 들이받았다. 충돌 충격으로 객차 여러 칸이 탈선하고 일부는 철로 옆 비탈 아래로 떨어졌다. 두 열차에는 모두 540여 명이 타고 있었다.
부상자 가운데 58명은 병원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장에는 소방·경찰과 군 긴급구조부대가 투입됐으며 구급차와 의료용 헬리콥터가 부상자 이송에 동원됐다.
한국인 탑승객은 10명으로 확인됐다.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이 현장에 파견한 영사가 탑승객을 대면 확인한 결과, 1명은 경상을 입었고 다른 1명은 턱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머지 8명은 다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경위와 관련해서는 시스템 장애 이후 운행을 재개한 과정에 조사가 집중되고 있다. 오스카르 푸엔테 교통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오전 8시 30분께 컴퓨터 통신 장애로 해당 구간 열차들이 정지했다. 그러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정지 신호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렌페 열차에 운행 재개 지시가 내려졌다.
푸엔테 장관은 당시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운행을 허용하더라도 감속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만 지시가 내려진 경위와 책임 소재, 충돌 당시 열차 속도 등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태다.
렌페는 관제 지시에 따라 운행을 재개한 뒤 사고가 발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선 이리오 열차가 계속 정차해 있던 이유와 당시 운행 순서, 충돌 상황은 조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1월에도 안달루시아주 코르도바의 아다무스 인근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해 46명이 숨졌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한 해 두 차례의 고속철도 참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한 조사와 안전 강화를 약속했다. 다만 두 사고의 원인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잇따른 참사로 철도망 유지관리 투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가 인용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은 2018∼2022년 고속철도망에 연평균 약 15억 유로를 투입했지만, 대부분 신규 건설에 사용했고 유지관리·교체·개선에 배정한 비중은 약 16%였다. 다만 이러한 투자 구조가 이번 사고와 직접 관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