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라면 값도 미리 맞췄나…농심·삼양·팔도 등 담합 의혹 조사
공정위, 라면 4사 현장조사…가격 인상 시기·폭 사전 협의 여부 확인 담합 확인 땐 서민 식비 부담 전가 논란…과거 처분 취소 전례도 주목
[이슈밸리=박지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농심·삼양식품·팔도·오뚜기 등 국내 주요 라면업체의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업체들이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협의했는지가 핵심으로, 서민 먹거리인 라면의 가격 결정 과정이 검증대에 올랐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중점조사기획단은 전날 이들 4개 업체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기간은 약 일주일로 알려졌다. 현재는 의혹을 확인하는 단계로, 담합 여부나 제재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번 조사는 김치와 두부, 즉석밥 등 가공식품에 이어 라면으로 확대됐다. 앞서 기획단은 주요 식품의 가격 담합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의혹을 조사해 왔다.
라면업체들이 유통업체의 판매가격을 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했는지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조사 간 가격 협의뿐 아니라 유통 단계에서 할인 경쟁을 제한했는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의미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파장은 개별 업체의 제재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자는 여러 회사의 제품 가운데 가격과 품질을 비교해 구매하지만, 경쟁업체들이 가격을 미리 맞췄다면 저렴한 제품을 선택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면은 적은 비용으로 한 끼를 해결하려는 소비자들이 찾는 식품이다. 봉지당 가격 차이는 작더라도 구매가 반복되면 가계 부담으로 쌓인다. 담합으로 가격 경쟁이 제한됐다면 그 부담이 소비자의 식비로 전가됐는지가 쟁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원가 상승에 따른 개별 업체의 가격 조정과 업체 간 사전 합의는 구분해야 한다. 원재료와 환율, 물류비 등 공통된 비용 변화로 가격 인상 시기가 비슷해질 수 있는 만큼, 인상 시점이나 폭이 유사하다는 사실만으로 담합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과거 라면업계 담합 제재가 취소된 전례도 있다. 공정위는 2012년 라면업체들의 가격 담합을 이유로 총 1354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지만, 대법원 판단 이후 2016년 관련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직권 취소했다.
대법원은 2015년 12월 농심 사건에서 가격 정보 교환 사실만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시장의 특성과 교환한 정보의 내용, 실제 가격 결정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조사에서도 업체 간 연락이나 정보 교환이 실제 가격 합의로 이어졌는지를 뒷받침할 증거 확보가 관건이다. 담합이 입증된다면 관련 제품과 기간, 가격에 미친 영향에 따라 소비자 피해와 업체별 책임 범위가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현장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개별 사건의 조사 여부와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담합이 확인될 경우 소비자 피해 회복 문제도 남는다. 문미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은 지난 8월 담합 피해 구제와 관련해 “현재 과징금은 전액 국고 일반회계로 귀속돼 정작 피해의 당사자인 소비자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가공식품에 이어 라면까지 조사 대상에 오르면서 먹거리 가격을 둘러싼 검증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라면업계의 가격 결정 관행과 소비자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