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회장 6주기…반도체-문화유산 기증까지, 삼성에 남긴 가치

1974년 한국반도체 투자…1993년 메모리 세계 1위 도약 신경영·인재 육성으로 경쟁력 구축…2만3000여 점 기증품은 해외 전시로

2026-10-23     이슈밸리

 

[이슈밸리=한유진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6주기를 앞두고 반도체에 대한 선제 투자와 품질 중심의 경영 혁신, 문화유산 보존 활동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불황에도 기술과 인재에 투자한 경영 방식은 삼성의 성장 기반이 됐고, 별세 후 유족이 기증한 미술품은 국내외 관람객이 한국 문화를 접하는 공공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23일 경기 수원 선영에서는 이 선대회장의 6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족과 삼성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이 선대회장은 2020년 10월 25일 별세했다.

삼성은 이날 배포한 추모 자료에서 이 선대회장의 주요 유산으로 반도체 투자, 신경영, 인재 육성, 문화예술 후원을 제시했다.

반도체 불황 속 투자…후발주자에서 메모리 선두로

이 선대회장의 반도체 사업 참여는 1974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에 개인 재산을 투자하면서 시작됐다. 국내 전자산업이 핵심 부품과 기술을 해외에 의존하던 시기에 반도체를 미래 성장 분야로 선택한 것이다.

삼성의 메모리 사업이 본격화한 계기는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이었다. 삼성은 같은 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을 확대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으며, 이듬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

삼성이 추모 자료에서 강조한 대목은 업황이 나빠졌을 때도 투자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던 시기에 생산라인을 확충하고, 더 큰 웨이퍼를 활용하는 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삼성은 자료에서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글로벌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을 각각 39.4%, 29.3%로 제시했다.

양에서 질로…신경영을 생산현장과 조직문화에 적용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표한 신경영은 삼성의 경영 기준을 양적 확대에서 품질 중심으로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발언은 제품뿐 아니라 조직과 제도, 일하는 방식까지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변화는 근무제도와 생산현장으로 이어졌다. 삼성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7·4제’를 도입했다.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퇴근 후 어학과 자기계발 시간을 확보한다는 취지였다. 불량이 발생하면 원인을 해결할 때까지 생산라인을 멈추는 라인스톱제도 시행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진행한 불량제품 화형식은 품질경영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삼성은 당시 휴대전화 등 약 500억원 규모의 제품을 폐기했다. 생산량이나 단기 매출보다 품질을 우선한다는 방침을 현장에 전달한 조치였다.

신경영은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로 확보한 역량을 실제 제품의 품질과 고객 신뢰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술의 융합에 주목…인재 육성은 장기투자로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와 컴퓨터, 소프트웨어, 로봇 등 첨단기술의 결합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삼성은 그가 전자·정보기술과 전통 제조업의 융합을 전망하고,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 역량 확보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상을 뒷받침하는 경영 원칙은 ‘인재제일’이었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것과 함께 직원이 장기간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0년 도입한 지역전문가 제도다. 직원들이 해외에 체류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 시장을 익히도록 급여와 교육비, 체류비 등을 지원했다. 당장의 업무 성과보다 해외 사업을 이끌 인력의 경험을 축적하는 데 목적을 둔 제도였다.

삼성은 이 선대회장이 회사에서 교육받은 직원이 퇴사하더라도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 투자를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개인 소장품에서 공공 자산으로…런던까지 이어진 컬렉션

문화예술 분야의 유산은 유족의 기증을 통해 공공 영역으로 확대됐다. 유족들은 2021년 4월 이 선대회장이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기증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를 비롯해 김환기·박수근·이중섭의 작품과 모네·피카소 등 해외 작가의 작품이 포함됐다. 개인이 수집한 작품을 국민이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이 밝힌 이건희 컬렉션 국내 순회전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넘었다. 해외에서는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에 이어 이달 1일부터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런던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영국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는 2000여 년에 걸친 한국 미술의 흐름을 소개한다. 삼성은 국보 10건과 보물 13건을 포함한 100건의 작품이 출품됐다고 밝혔다.

조지 오스본 영국박물관 이사회 의장은 전시 개막 행사에서 이건희 일가의 문화유산 기여가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이 선대회장의 경영 유산은 기술·인재에 대한 장기투자와 품질 중심의 조직 변화로, 문화 분야의 유산은 기증품의 공개와 연구·전시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은 이를 산업 경쟁력과 문화적 기반을 함께 확충한 활동으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