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0년 전, 가장 추웠던 10월 중순 독수리 훈련

2026-10-24     이슈밸리

 

[이슈밸리=윤대우 편집장] 누가 내게 어느 계절이 가장 추우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도 10월이라고 답한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보다 먼저 떠오르는 추위가 있다. 30여년 전, 얇은 군복 야상 안으로 스며들던 그해 10월의 밤공기다.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미 독수리훈련에 참가해 미군과 함께 진지에서 보초를 섰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바람은 싸늘했다. 아직 겨울이 아니라 방한복을 입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낮 기온이 20도 안팎이었는데, 일주일 새 밤 기온이 영상 2~3도까지 내려갔던 것 같다.

곁에 선 미군은 왠지 따뜻해 보였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와 부대 동료들은 밤새 바들바들 떨었다. 그날의 추위는 세월이 흘러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달력에 10월이 오면 그 밤이 먼저 생각난다.

가을은 밖에서 보는 것과 그 안에 오래 서 있는 것이 다르다. 단풍을 보러 나온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서늘함이겠지만, 밤새 자리를 지켜야 하는 군인에게는 벌써 겨울이다.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낮에 보았던 가을 풍경도 멀어진다.

그 시절 이등병의 배는 늘 허기졌다. 밥을 먹고도 배가 고팠고, 추운 날에는 더 그랬다. GOP에서 군 생활을 마친 아들에게 물으니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후배들이 우리보다 잘 먹고 따뜻하게 지낸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군인에게 추워지는 계절이 왔다는 사실은 같다. 집 생각이 나는 밤도 있을 테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 문득 마음이 허전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복무 기간이 예전보다 짧아졌다고 하지만, 그 시간을 하루씩 살아내는 당사자에게는 여전히 긴 날들이다.

그래서 휴가 나온 군인에게는 “또 나왔어?”라거나 “벌써 나왔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반가워서 건넨 말이더라도, 오랜 기다림 끝에 집에 온 사람에게는 조금 서운하게 들릴 수 있다.

“잘 왔다. 먹고 싶은 것 없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얼굴 한번 찬찬히 보고, 밥을 한 그릇 더 담아주는 것으로 반가운 마음은 전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군복 입은 청년들이 다 아들 같고 조카 같다. 한때는 나도 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젊은 얼굴부터 보인다. 긴장이 높아졌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전방에서 근무하는 장병들과 그 부모의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가끔 휴가 나온 군인들이 단체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밥값을 대신 내주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런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흐뭇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청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밥 한 끼로 건넨 것이다. 계산을 마친 뒤 조용히 식당을 나섰을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나도 한번 그러고 싶은데, 어쩐 일인지 요즘은 식당에서 군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역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식당에서도 휴가 나온 군인들을 곧잘 보았다. 요즘 내 눈에 덜 띄는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가끔은 그 많던 청년들이 다 어디로 갔나 싶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자주 보이지 않아도 그들은 지금 자기 자리에 있다. 누군가는 밤바람 부는 경계 초소에 서 있고, 누군가는 바다와 하늘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마치고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데에는 그들의 수고가 있다.

꼭 군인들만이 아니다. 불이 난 건물로 들어가는 소방관, 강력범, 마약범, 사기범들을 잡기 위해 뛰어가는 경찰관이 있다. 화재를 진압하고 범죄자를 쫓는 일은 뉴스에서는 몇 줄로 끝나지만, 현장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움직여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10월의 바람이 다시 차가워진다. 서른 해 전 진지에서 떨던 내 모습 위로 지금 어딘가에서 근무하고 있을 젊은 얼굴들이 겹친다. 제복 입은 모든 분들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