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방을 ‘재정 빨대’라 부른 추미애 지사, 부적절한 발언 사과해야
[이슈밸리=사설]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은 가장 골치 아픈 재정 빨대’ 발언은 단순한 실언으로 넘기기 어렵다.
경기도 재정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려 했다는 해명과 별개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곳으로 먼저 들어가는 소방 조직을 ‘빨대’로 비유한 언어 자체가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추 지사는 국정감사에서 소방 인건비와 사업비에 막대한 예산이 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실제로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뒤에도 상당한 소방 재원이 시·도 일반회계에서 충당되는 구조는 개선 과제다. 경기도 역시 소방 재원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을 도 일반회계 전입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지사가 겨냥했어야 할 대상은 현장 소방관이 아니라,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비용 부담을 지방에 남겨둔 제도와 중앙정부의 불완전한 재정 분담 구조였다.
예산이 부담스럽다고 말할 수는 있다. 국비 지원 확대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의 안전을 위해 쓰이는 필수 비용을 두고 ‘빨대’, ‘잡아먹는다’는 식의 표현은 예산 논의는 정책 토론이 아니라 현장 인력에 대한 폄훼로 들리게 된다.
소방 예산은 누군가의 주머니를 축내는 비용이 아니라, 도민이 위기 때 국가와 지방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최소한의 안전 보장 비용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참담하다. 소방청 통계연보 기준 소방공무원 순직·공상자는 2020년 1,006명, 2021년 936명, 2022년 1,083명, 2023년 1,336명으로 늘었다. 2024년 공상자는 1,445명으로 집계돼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많았다.
최근 5년간 최소 5,800명 넘는 소방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숨지거나 다친 셈이다. 2023년에는 순직 2명과 공상 1,334명이 집계됐고, 2024년에는 공상자만 전년보다 111명 늘었다.
소방은 화재 진압만 하는 조직이 아니다. 대형 화재와 산불, 교통사고, 구조·구급, 강력 사건 현장의 응급 대응, 생활안전 출동까지 119는 국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안전망이다.
재난이 커지면 지역 경계를 넘어 전국의 인력과 장비가 동원된다. 대형 공장과 물류센터, 고층건물, 위험물 취급시설 화재에서는 매번 소방관의 생명 자체가 마지막 방어선이 된다.
16일 부천의 금속 사출 인쇄공장 화재에서도 소방관 5명을 포함해 7명이 다쳤고, 초기 진입한 소방관 2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 중 1명은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다. 바로 이런 날, 소방의 헌신과 위험을 예산의 ‘빨대’로 표현한 발언이 더 크게 상처를 남기는 이유다.
추 지사는 화재 현장을 찾아 부상 소방관들의 치료와 회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현장 방문과 위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위로가 앞선 발언의 상처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논란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을 피한 태도 역시 사안을 가볍게 본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소방공무원과 가족들에게 사과한 상황이라면, 당사자인 도지사가 직접 설명하고 유감을 표하는 것이 순서다.
정치 지도자가 소신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여당, 야당의 주장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표현이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확인됐을 때 이를 바로잡는 것 역시 지도자의 자질이다. 소신이 고집으로, 결단이 아집으로 비치기 시작하면 행정은 시민의 신뢰를 잃는다.
추 지사에게 필요한 것은 긴 해명이 아니다. “소방관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지만,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관과 가족들에게 사과한다”는 분명한 한마디면 된다.
이어 소방 재정의 국비 분담 확대, 현장 인력과 장비 보강, 공상 소방관 치료·회복 지원이라는 실질적 대책을 중앙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소방은 경기도 재정을 축내는 존재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내놓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유치원,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