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굴종을 지양한다면서, 상대에 따라 기준이 달라져서야

2026-10-14     이슈밸리

 

[이슈밸리=사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한미 관계의 협력 강화를 말하면서도 “굴종적 태도나 사대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틀리지 않다. 어떤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국익과 자존을 지키는 외교는 당연한 원칙이다. 문제는 국민이 그 원칙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지 묻고 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핵심 우방인 미국을 향한 경계의 메시지로 읽혔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독자성과 당당함을 잃지 않겠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발 하이브리드 해킹이 많이지고, 북한의 지뢰 위험과 미사일 위협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중국과 북한을 향한 분명한 경고와 원칙은 충분했는가. 국민은 의문을 품고 있다. 

외교는 한쪽만 향해 단호하고 다른 쪽에는 유난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때 설득력을 잃는다. 중국의 사이버 위협에는 국민 정보와 금융 안전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는 도발을 도발로 규정하고, 국민의 생명과 장병의 안전을 최우선에 둔다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굴종을 지양하는 국가의 기본 자세다.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도 같은 원칙에서 봐야 한다. 국익을 위해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물밑 접촉을 이어가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 호혜와 관계 강화를 먼저 말한다면, 국제사회와 전쟁 피해국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살펴야 한다. 대화의 문은 열어 두되 침략과 국제법 위반에 대한 원칙까지 흐려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현장 행보도 국민 눈높이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산을 찾아 부캉이를 관람하고 지역 민생을 챙기는 모습은 문화와 지역경제를 살피는 일정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인천에서 시민 여러 명이 피해를 입은 흉기 난동 사건 뒤 현장을 찾아 부상자와 가족을 위로한 것 역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다만 국민은 위기와 충격의 순간에 국가 지도자가 무엇을 먼저 말하고, 어디에 먼저 무게를 두는지 예민하게 지켜본다.

지지율이 하락할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사가 아니라 일관된 기준이다. 미국에는 당당함을 말하면서 중국에는 침묵하고, 북한의 위협에는 모호하며, 침략국 러시아에는 관계 개선을 앞세운다는 인상을 준다면 국민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굴종적 외교를 지양하자는 말은 옳다. 그러나 그 원칙은 가장 말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라, 가장 불편한 상대에게도 적용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국익 외교의 출발점은 선택적 당당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세우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