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영웅으로 재미 본 SBS 드라마...김지원 '닥터X' 대박 조짐
[이슈밸리=윤대우 기자] 김지원 주연의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방송 초반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첫 회 전국 시청률 11.4%로 출발한 데 이어 2회는 14.9%를 기록했다. 단 1회 만에 3.5%포인트 뛰어오른 수치다. 첫 주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확보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시청자들 반응이 폭발적이다. 각종 SNS에는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반응이 다수다.
‘닥터X’의 계수정은 병원 조직의 위계와 부패, 실력 없는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생사가 오가는 수술실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정확하며, 부당한 요구에는 직설적으로 맞선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그래서 시청자는 그가 수술대 위에서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환자를 살려내는 장면에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무엇보다 김지원은 강한 인물을 과장된 영웅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차가운 판단과 환자를 향한 집중력을 함께 보여주며 계수정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손현주, 이정은 등 연기파 배우들의 탁월한 모습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범택시’에서 ‘김부장’까지…악을 향한 직진
SBS는 최근 몇 년간 ‘사이다 히어로’ 계열 드라마에서 여타 방송사보다 뚜렷한 성과를 냈다. ‘모범택시’ 경우 법과 제도의 틈을 피해 간 악인들을 대신 응징해 시청자들을 열광 시켰고, 부패한 권력과 맞붙는 ‘열혈사제’, 돈과 배경이 통하던 세상에 실력과 집요함으로 균열을 내는 ‘재벌X형사’도 인기를 모았다.
특히, 올해 소지섭이 연기한 '김부장'은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지만 딸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단단하고 강한 인물로 변모한다. 이 드라마는 6회 만에 전국 시청률 22.3%, 순간 최고 26.4%를 기록했다. 단순히 액션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끝내 포기하지 않고 악을 돌파한다는 확실한 약속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닥터X’도 같은 계열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총이나 주먹 대신 수술칼과 의술을 든 영웅이다. 병원이라는 폐쇄적 권력 구조 속에서 환자의 생명과 의사의 본분을 앞세우는 인물이 부조리와 맞서는 방식이다. SBS가 그동안 쌓아 온 ‘현실 밀착형 다크 히어로’의 무대가 택시와 경찰, 회사에서 병원으로 옮겨간 셈이다.
복잡한 현실일수록 강한 승리의 서사
이들 작품의 주인공은 대체로 압도적이다. 판단이 빠르고, 실력이 뛰어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시청자는 주인공이 매번 완벽해서라기보다 현실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대신 돌파해 주기 때문에 이들에게 열광한다.
경기 불안과 고용 걱정, 주거비 부담, 관계 갈등처럼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은 시기일수록 이런 감정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실의 시청자는 부당한 일을 겪어도 즉시 이길 수 없고, 조직의 벽을 혼자 넘기도 어렵다.
그러나 드라마 속 인물은 끝내 해내고,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대가를 치른다. 짧고 분명한 승리의 구조가 주는 카타르시스다.
이 때문에 ‘영웅 서사’는 반드시 초능력이나 거대한 세계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국 시청자가 반응하는 영웅은 대개 생활 세계 안에 있다. 택시기사, 형사, 신부, 회사원, 의사처럼 낯익은 직업을 가진 인물이 현실의 불공정을 깨뜨릴 때 설득력이 커진다. 할리우드 마블식 초현실 영웅과 달리, “나 대신 저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중요하다.
공감형 드라마의 힘도 여전
그렇다고 한국 드라마 시장이 권선징악물만 찾는 것은 아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매력은 누군가를 꺾고 이기는 데 있지 않았다. 환자를 살피고, 서로의 실수를 감싸고, 고된 하루 끝에 함께 밥을 먹고 음악을 나누는 의사들의 모습이 시청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됐다.
‘미생’도 직장인의 현실과 맞닿으며 깊은 공감을 낳았다. 이 드라마는 ‘승리’보다 ‘버팀’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JTBC ‘경도를 기다리며’는 박서준, 원지안의 탁월한 사랑 연기가 시청자를 울고 웃겼다는 평가다.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 엇갈린 관계, 다시 다가가기까지 필요한 용기를 따라가며 로맨틱 코미디가 줄 수 있는 설렘과 여운을 살린다.
최근 티빙 오리지널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처럼 일확천금보다도 직장과 가족, 인간관계 속의 현실적 선택을 다루는 작품에 시선이 쏠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시청자가 찾는 것은 한 가지 장르가 아니라, 현실에서 얻기 어려운 해방감과 공감, 그리고 감정의 보상이다.
영웅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반대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라도 결말과 인물의 선택이 흐릿하면 시청자의 아쉬움은 커진다.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는 배우들의 연기와 강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급박한 전개와 결말을 놓고 평가가 엇갈렸다.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허구적 쾌감과 역사적 무게 사이의 균형이 특히 어렵다.
영웅을 내세운 드라마라면 그 영웅이 왜 싸우고 무엇을 지키며, 끝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현실의 제약과 역사적 틀을 의식하다가 주인공의 방향성까지 모호해지면, 시청자는 이야기의 추진력을 잃었다고 느낄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영웅’보다 명확한 신념과 대가를 감수하는 인물이 더 오래 남는 이유다.
‘닥터X’의 초반 흥행이 SBS ‘모범택시’, ‘열혈사제’, ‘재벌X형사’, ‘김부장’에 이어 다시 한번 뚜렷한 해결사 캐릭터로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분간 안방극장에서는 현실에 발을 딛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강하고 선명하게 승리하는 ‘초격차 생활형 영웅’이 계속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미생’처럼 삶을 조용히 다독이고, ‘경도를 기다리며’처럼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드라마 역시 꾸준히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초능력보다, 답답한 현실을 시원하게 뚫어 주거나 내 마음을 대신 알아봐 주는 인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