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화 ‘암살자들’, 왜 국민의 거센 반발 불러왔나

2026-09-29     이슈밸리

 

[이슈밸리=윤대우 편집장] 영화 ‘암살자들’이 왜 이토록 거센 반발을 불렀는가. 단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뤘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이미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하고 기존의 공식 발표에 의문을 던진 영화가 적지 않았다. 관객도 대체로 그것을 창작의 자유와 상상의 영역으로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관객들이 영화의 결말보다 더 깊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하필 지금인가.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가. 역사적 비극을 다시 꺼내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   

허진호 감독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문제가 이렇게 확장될지 몰랐다”는 취지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의 국민 정서는 과거와 다르다. 영화 한 편을 가볍고 편안하게 넘길 만큼 현실이 여유롭지 않다.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와 생존의 안전 문제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불안과 분노를 쌓아 왔다. 치솟는 물가와 고단한 삶 속에서 주식과 ETF 시장의 불안정에 한숨짓고, 꽉 막힌 부동산 규제와 현실성 없는 농지정책에 좌절하며 누적된 민생의 고통이 영화라는 도화선에 예기치 않게 옮겨붙은 것이다.

결국 영화가 건드린 것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관객의 가슴속에 치밀어 오른 본질적인 질문은 하나다. “이 나라는, 국가는 과연 누구 편에 서 있는가.”   

현실의 공기는 살벌하다. 지난 21일 DMZ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군 장병들이 지뢰 폭발로 크게 다쳤다. 군 당국은 사고 발생 뒤 여러 날이 지나서야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다. 국과수 감정에서 폭약 성분이 검출됐고, 지뢰 형태도 북한군 목함지뢰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었다.

국민이 분통을 터뜨린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군이 작전 중인 길에 아군이 지뢰를 매설했을 리 만무하고, 북한군이 최근 접경 지역에서 지뢰 매설 작업을 했다는 정황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장병의 신체가 훼손된 중대 사건인데도 정부의 메시지는 국민이 느끼기에 지나치게 늦고 조심스러웠다.

신중함과 침묵은 결코 같다 할 수 없다. 최종 조사가 필요하다는 원론은 맞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 정황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국민에게 먼저 진솔하게 설명하고, 피해 장병과 가족에게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평화는 북한의 도발 의혹 앞에서 말을 아끼는 것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오직 국민의 생명과 군의 사기를 단호하게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중국을 향한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성남 분당에서는 중국 최고지도자 이름을 상호로 쓴 중식당에 중국 국적 남성 4명이 침입해 래커와 페인트를 뿌리고 식재료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범행 직후 중국으로 출국했고,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국제공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식당 업주는 하루아침에 영업 기반을 통째로 잃을 위기에 놓였다.   

제주에서는 중국인 여성들을 감금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중국인들이 붙잡혔고, 일부 피의자는 이미 중국으로 달아난 상태다. 강남 마약 사건, 군 정보요원 정보 유출 의혹, 군사시설 무단 촬영 논란까지 중국 관련 사건이 이어질 때마다 국민은 똑같은 절망 섞인 질문을 던진다.

왜 한국 땅에서 벌어진 중대 범죄의 피의자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면, 우리는 늘 '국제공조 요청'이라는 공허한 단계에서 멈춰 서야 하는가. 무비자 입국과 출입국 관리의 빈틈은 언제 메워지는가. 중국 정부는 한국의 수사 협조 요청에 과연 성실히 응답하고 있는가. 정부는 국민에게 무엇을 설명했고, 도대체 어떤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는가.

이 외침은 특정 국적의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혐오가 아니다. 범죄 혐의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 중국 정부의 성실한 사법 공조,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치안 및 출입국 관리 책임을 엄중히 묻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국적 피의자가 연루된 중대 사건이 반복되는데도 정부가 “혐오를 경계하자”는 방어적 수사만 앞세운다면, 그것 역시 국민을 향한 책임 있는 답변이 될 수 없다.

결국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북한과 중국을 무조건 적으로 규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북한의 지뢰에 우리 군인들이 다치고, 중국 국적 피의자들이 범죄 후 유유히 출국하는 사건이 반복되는데도 정부가 국민의 불안과 상식의 눈높이를 먼저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동산과 농지 규제로 내 집 마련과 생업의 꿈마저 흔들리고, 주식시장의 부침 속에서 자산을 위협받는 민생의 피로감이 더해졌다. 북에는 평화, 중국에는 외교, 경제에는 땜질식 처방을 외치면서 정작 국민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과 상식의 언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불신이다.

이러한 현실의 불신 속에서,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가 공식 발표와 다른 결을 암시하자 관객들의 의심과 피로감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 묻는다. “현실의 거대한 위협과 눈앞의 민생 고통에는 침묵하면서, 왜 과거의 역사적 상처는 자꾸만 정치적으로 소비하려 하는가.”

역사의 침략과 전쟁, 분단의 상처를 몸소 겪어낸 국민은 국가가 외부의 위협과 민생의 위기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알아챈다. 국민은 평화를 원하지만 절대 굴종을 원하지 않는다. 외교적 관계를 지지하지만 치안과 안보의 공백, 그리고 민생을 외면하는 무능을 단 한 순간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본래 마음이 한없이 여린 사람들이다.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 한 마리의 행방에도 가슴 졸이고, 길을 잃은 상어 한 마리의 생명에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약한 존재와 낯선 생명에게까지 온기를 내어주는 선한 공동체다.

그러나 참을 만큼 참았는데도 나라의 기본 기틀과 안전, 그리고 삶의 터전이 무너진다고 느끼는 순간, 그 온기는 거대한 결기로 돌변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수많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그러했듯 공동체와 가족,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온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진짜 역사다.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야당은 이제 이 민심의 바닥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 의혹에는 명확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중국 관련 범죄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며, 주식·부동산·농지 등 민생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의 안전과 삶이 그 어떤 외교적 고려보다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국민은 오래 참고 기다려줄 줄 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보다 외부 세력의 눈치를 더 보고 민생을 외면한다는 인식이 굳어지는 순간, 그 인내는 더 이상 정권을 지탱해 줄 정치적 자산이 되지 못한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문화적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민심이 어디까지 분노하고 지쳐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