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최민식·한소희, 익숙한 이야기...탁월한 연기
[이슈밸리=윤대우 기자] 할리우드 명작으로 손꼽히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동명 영화 《인턴》을 흥미롭게 보았던 관객들이라면, 최민식과 한소희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재탄생한 한국판 《인턴》 역시 반가운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번 작품은 인물 간의 결핍과 성장을 섬세하게 포착해 온 김도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김도영 감독과 왕혜지 작가가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했다.
원작이 지닌 따뜻한 휴머니즘의 결을 살리면서도, 고속 성장하는 국내 패션 스타트업 생태계와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각자 치열하게 삶을 버텨내는 현대인들의 현실적인 풍경을 한국적 정서로 밀도 있게 녹여낸 점이 리메이크의 배경이자 가장 큰 차별점이다. 익숙한 이야기의 틀 속에서 우리 시대의 일상과 세대 갈등을 보편적인 공감대로 확장하려 한 의도가 돋보인다.
작품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은 두 배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평소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엄격한 배우 최민식은 은퇴 후 실버 인턴으로 재취업한 ‘기호’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는다. 과장된 수사나 설정 없이도 깊이 패인 눈빛과 정제된 자세 하나로 인물이 통과해 온 세월과 연륜을 고스란히 체화해 낸다.
작은 몸짓과 담백한 대사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연기는 단순히 '잘하는 연기'를 넘어 배우라는 직업이 도달할 수 있는 경외로운 품격을 보여준다.
이에 맞서는 한소희의 재발견 또한 눈부시다. 쉼 없이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성공을 향해 질주하다 문득 찾아오는 불안과 흔들림을 지닌 젊은 CEO ‘선우’를 맡아 폭넓은 감정선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강렬한 외적 아로마를 앞세우기보다, 내면의 균열과 고뇌를 차분하게 쌓아 올리는 표정 연기가 돋보인다.
‘한소희가 이토록 연기를 잘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뒤늦게 본 ‘경도를 기다리며’와 ‘메이드 인 코리아2’에서 원지안을 재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작들에서 보여준 신선한 행보와 맞물려, 그가 왜 이 굵직한 주연 자리를 꿰찼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가 선사하는 최고의 관전 포인트는 두 배우 사이의 간극에서 피어나는 세대 간의 호흡이다. 살아온 궤적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온도를 체온으로 나누는 과정이 억지스러운 신파 없이 담백하게 펼쳐진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사건 전개 대신, 인물과 인물이 마주 앉아 주고받는 시선의 깊이와 호흡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물론 이 영화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가 파격적이거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반전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할 수 있는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온전히 배우들이 뿜어내는 감정적 설득력이다. 최민식의 묵직한 중후함과 한소희의 예민하면서도 성숙해진 결기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뻔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 영화는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가만히 손을 내밀어 주는 다정한 위로다. 비록 실패했거나 인생의 시계가 너무 늦었다고 체념하는 찰나에도, 삶의 새로운 페이지는 언제든 펼쳐질 수 있다는 온화한 메시지를 건넨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자신만의 보폭을 잃지 않는다면 그 끝엔 잔잔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격려는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화려한 시각적 기교나 자극적인 장치 대신,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눈빛과 따뜻한 공감을 원한다면 이번 추석 연휴, 마음의 온도를 높여줄 영화로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