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641억원 ISDS ‘완승’…불법 투자 막고 소송비까지 받아낸다
[이슈밸리=박지영 기자] 한국 정부가 중국인 투자자가 제기한 2641억원 규모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최종 승소했다. 배상 책임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물론 취소 절차에 투입된 소송비용까지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국민 세금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대규모 배상 위험을 차단하고 ‘위법한 투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원칙도 지켜낸 의미 있는 성과다.
법무부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중국인 투자자 민씨가 제기한 중재판정 취소신청을 전부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취소위원회는 민씨에게 한국 정부가 취소 절차에서 지출한 소송비용 약 15억1283만원과 이에 따른 이자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원 중재판정부가 지급하도록 한 소송비용 약 49억1260만원까지 합하면 정부가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64억원을 웃돈다.
2조원에서 시작된 청구…정부, 배상 책임 완전히 벗어
이번 사건은 민씨가 중국 베이징의 화푸빌딩 매입·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국내 금융기관에서 조달한 대출을 둘러싸고 시작됐다.
민씨는 2007년 국내에 파이코리아를 설립하고 우리은행이 주선·지급보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3800억원을 조달했다. 이후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대출채권을 인수한 우리은행이 담보로 제공된 회사 주식을 매각했다.
민씨는 이에 반발해 국내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출 과정에서 은행 임직원에게 금품이나 이익을 약속·제공한 혐의 등에 대해서도 유죄가 인정돼 징역 6년이 확정됐다.
그럼에도 민씨는 은행의 주식 매각과 한국의 민·형사 사법절차가 한·중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며 2020년 8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다. 최초 청구액은 약 2조원에 달했으며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약 2641억원으로 줄었다.
원 중재판정부는 2024년 5월 민씨의 회사 설립과 주식 취득이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해 대출을 조달하려는 위법한 계획의 일부라고 판단했다. 해당 투자는 협정상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민씨는 판정부가 협정과 국내법을 잘못 해석하고 충분한 변론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며 판정 취소를 신청했다. 그러나 취소위원회는 원 판정부의 협정 해석이 합리적이고 변론 기회도 충분히 보장됐으며 판정 이유 역시 명확하다고 판단했다.
불법 투자에 단호히 대응…국민 부담 지켜낸 정부
이번 승소는 정부가 막대한 국제분쟁 비용과 배상 위험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사건의 위법성과 투자협정 적용 여부를 끝까지 다퉈 얻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상대방의 투자 과정에 불법 행위가 개입됐다면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국제중재 절차에서 다시 확인했다. 해외 투자자 보호제도가 위법한 사업이나 부당한 손실을 보전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가 청구받은 2641억원의 배상책임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도록 만든 점도 성과다. 국가의 사법절차와 금융기관의 적법한 권리 행사를 국제분쟁에서 지켜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국민 부담까지 돌려받을 근거를 확보했다.
법무부는 “국내법상 위법한 투자는 ISDS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며 소송비용 환수와 결정문 공개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론스타·엘리엇 이어 성과…국제분쟁 대응력 입증
정부는 최근 굵직한 국제투자분쟁에서도 잇따라 유리한 결정을 끌어냈다.
지난해 11월 론스타 사건에서는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중재판정 일부가 취소되면서 당시 원금과 이자를 합해 약 4000억원에 달했던 배상 의무가 사라졌다.
올해 2월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엘리엇 사건의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도 승소해 약 1600억원의 배상 의무가 잠정적으로 소멸했다.
이번 중국인 투자자 사건까지 최종 승소하면서 정부의 국제분쟁 대응 조직과 법률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해졌다.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을 치밀하게 분석해 수천억원의 국부 유출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정부와 법무부의 대응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법무부는 민씨가 임의로 지급하지 않을 경우 중국 내 재산을 상대로 적극적인 집행 절차에 나설 방침이다. 판정에서 승리한 데 이어 비용 환수까지 마무리해야 이번 국제분쟁 대응이 온전한 성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