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파트 주차장서 축구했던 필자가 경험한...1993년 용산공원의 충격

2026-08-21     이슈밸리

 

[이슈밸리=윤대우 기자] 노량진에서 재수 생활을 하던 1993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학원 친구들과 동부이촌동에 있던 용산 가족공원을 찾아 단합대회를 열었다. 지금은 몰라도 당시엔 종합반 재수생들끼리 단합대회도 하던 시절이었다.

서울 광장동과 목동에서 유년, 청소년 시절을 보낸 필자는 마음껏 뛰어놀 공간에 늘 목말라 있었다.

축구장은 커녕 뛸 공원도 마땅치 않아, 비좁은 골목길이나 차량이 빼곡한 주차장을 전전해야 했고, 방과 후 굳게 닫힌 학교 운동장을 보며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는 운동장이 왜 존재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빽빽한 빌딩 숲과 아스팔트 사이에서 자란 내게, 33년 전 용산가족공원의 넓고 푸른 잔디밭은 신선한 충격을 넘어선 경이로움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초록빛 공간은 마치 전혀 다른 세상 같았고, 그날 마주했던 청량한 해방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용산가족공원은 1992년 11월 5일 문을 열었다. 주한미군이 골프장으로 사용하던 미8군 부지 일부를 1991년 반환받아 서울시가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었다. 내가 처음 찾았던 1993년에는 개원한 지 불과 1년 남짓한, 말 그대로 갓 태어난 공원이었던 셈이다.

십여 년이 지나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첫 만남만큼의 강렬한 감동은 없었다. 내가 변한 탓인지, 세상이 달라진 탓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던 뭉클한 반가움만은 여전했다.

다행히 오늘날 일산, 광교, 동탄 등 신도시 곳곳에는 호수공원과 중앙공원이 들어서고, 곁에서 자연을 누리며 호흡하는 일이 과거보다 한결 수월해졌다. 이제 공원은 단순히 '비어 있는 땅'이 아니다. 삭막한 도시의 피로를 씻어내고, 고요히 내면을 사색하며, 활기차게 몸을 움직이는 치유와 재생의 공간이다. 가족이 소풍을 즐기고, 연인이 추억을 쌓으며,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뛰어노는 우리 삶의 찬란한 무대다.

그렇기에 공원은 도시에 필수 불가결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온전히 마주하기 힘들 만큼 고밀도로 팽창한 서울 같은 거대 도시일수록 그 가치는 더욱 절실해진다. 물론 도시 한복판에 넓은 유휴 부지가 생기면 주택부터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현실도 십분 이해한다. 집값 폭등과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에게 주거 안정은 그 무엇보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땅을 콘크리트로 채우는 것만이 주거 문제의 유일한 해답일 수는 없다. 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충족하면서도, 도시의 숨통인 공원을 보존하는 공간 계획이 수반되어야 한다.

당장의 개발 이익과 산술적 효율만으로 도시의 백년대계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 몇 동을 더 짓지 않는다고 해서 청년들의 보금자리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건물로 덮인 땅을 훗날 다시 흙과 숲으로 되돌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정부가 주택 공급을 검토하는 대상은 지금 시민들이 이용하는 용산공원 자체라기보다 용산어린이정원과 옛 방위사업청 부지, 장교숙소와 군인아파트 부지 등 용산공원으로 조성되거나 연계될 주변 공간이다.

그러나 이들 부지에 대규모 주택이 들어서면 용산공원과 남산, 한강을 하나의 녹지축으로 연결하려던 구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려하는 것은 서울 한복판에 미래세대를 위해 남길 수 있었던 거대한 푸른 공간이 개발 논리에 따라 조각나고 축소되는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지가가 높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거대한 센트럴파크가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곳은 개발의 물결에서 비껴가 우연히 살아남은 공터가 아니다. 도시가 호흡하고 시민이 자연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굳건히 지켜낸 공동의 안식처다. 이는 오늘의 시민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온전히 누려야 할 위대한 자산이다.

광화문의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를 조성한 선택도 같은 맥락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더 막대한 임대 수익을 좇는 대신 서점을 품어낸 결과, 무수한 어린이와 청년들이 그곳에서 책을 매개로 더 넓은 세상과 조우했다. 그들이 성장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공간의 진정한 가치는 결코 눈앞의 수익과 효율만으로 환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공원 숲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시민의 건강과 정서적 풍요를 견인하며 공동체의 품격을 한 차원 높인다.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청년들에게는 팍팍한 일상 속 대가 없이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노년층에게는 가장 가까운 문턱 없는 건강 증진 시설이 되어준다. 나아가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탁한 공기를 정화하며, 기후 재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태적 완충 지대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거스를 수 없는 섭리다. 특히 녹지 인프라가 부족한 서울의 경우, 남은 대규모 공간을 다룸에 있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불가피한 개발이 이루어지더라도 공원과 녹지를 최우선으로 확보하고, 그 안에서 주거와 교통, 문화 시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번듯한 집과 화려한 건축물만이 아니다. 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고, 잔디 위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계절의 경이로운 변화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도시의 여백'도 함께 남겨주어야 한다.

공원은 자투리땅에 마지못해 짓는 시설이 아니다. 우리의 내일과 미래 세대의 온전한 삶을 위해, 가장 먼저 정성스레 비워두어야 할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