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300년 식민지·74일 전쟁…아르헨, 축구로 만난 스페인과 잉글랜드

2026-07-17     이슈밸리

 

[이슈밸리=권동혁 기자] 국가 간 스포츠 라이벌은 흔하다. 그러나 어떤 경기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역사와 정치, 국민 감정이 응축된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한국과 일본의 한일전이 그렇듯, 세계 축구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으로 손꼽히는 맞대결이 바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다.

두 나라는 월드컵이나 국제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결승전 못지않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선수들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뛰고, 팬들은 경기 결과를 단순한 스포츠 승부가 아닌 자존심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이 같은 경쟁은 단순히 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1966년 월드컵에서 시작된 축구적 악연 위에 1982년 포클랜드 전쟁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영유권 분쟁이 겹치면서, 세계 축구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

1966년 월드컵…라이벌의 시작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감정의 골은 포클랜드 전쟁보다 앞선 1966년부터 형성됐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 양국은 거친 몸싸움과 판정 논란 속에 격돌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은 항의 과정에서 퇴장당했고, 아르헨티나는 심판 판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잉글랜드는 제프 허스트의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거뒀지만, 이 경기는 양국 축구사에 깊은 앙금을 남겼다.

이후 두 나라의 맞대결은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역사와 감정이 얽힌 상징적인 승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포클랜드 전쟁…74일간의 현대사

1982년 4월 2일, 당시 레오폴도 갈티에리 군사정권은 오랫동안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온 말비나스 제도(영국명 포클랜드 제도)​를 전격 점령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경제난과 반정부 여론으로 군사정권의 통치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동시에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영유권 분쟁 역시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군사정권이 국민적 결집을 유도하기 위해 군사행동을 선택했다는 평가와 함께, 오랜 영토 분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영국은 즉각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기동부대를 남대서양에 파견했고, 약 74일간 이어진 전투 끝에 1982년 6월 14일 수도 스탠리를 탈환하며 승리를 거뒀다. 전쟁에서는 영국군 255명, 아르헨티나군 649명, 포클랜드 주민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의 해외영토로 자체 정부와 의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외교와 국방은 영국이 담당한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말비나스 제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어 영유권 문제는 여전히 국제사회의 미해결 현안으로 남아 있다.

마라도나가 만든 '축구의 복수'

이후 양국 라이벌 관계를 세계적인 상징으로 만든 경기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장면을 연출했다.

첫 번째는 손으로 공을 밀어 넣은 이른바 '신의 손(Hand of God)' 골이었다. 이어 그는 잉글랜드 선수 다섯 명을 차례로 제친 뒤 골을 성공시키며 훗날 '세기의 골(Goal of the Century)'​로 불리는 명장면을 완성했다.

아르헨티나는 2대 1로 승리했고,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은 이를 4년 전 포클랜드 전쟁 패배로 상처 입은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한 상징적 순간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잉글랜드에서는 지금도 '신의 손'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논란이 큰 장면 가운데 하나로 기억된다.

양국의 경쟁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에서는 데이비드 베컴이 디에고 시메오네와 충돌한 뒤 퇴장당했고, 경기는 2대 2 무승부 끝에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에서 승리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잉글랜드가 베컴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거두며 설욕했다.

이처럼 두 나라가 맞붙을 때마다 승부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결승서 만난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축구 황제' 메시와 신흥 제국 스페인의 운명 대결

공교롭게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아르헨티나는 이제 또 다른 역사 앞에 섰다. 아르헨티나는 오는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이스트러더퍼드 메트라이프 스타디움(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과 우승컵을 놓고 격돌한다. 킥오프는 현지시간 오후 3시(한국시간 20일 오전 4시)다.

이번 결승은 단순한 우승 경쟁을 넘어 세계 축구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무대로도 평가받는다.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2연패와 '축구 황제'의 마지막 대관식을 꿈꾸고 있다.

반면 유럽 최강 스페인은 야말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황금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다. '전설의 마지막 무대'와 '새로운 제국의 탄생'이 충돌하는 이번 결승은 세계 축구가 주목하는 최고의 빅매치로 꼽힌다.

300년 식민지배보다 현재의 영토 분쟁이 더 큰 상처

흥미로운 점은 아르헨티나가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음에도 오늘날에는 잉글랜드를 향한 것과 같은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페인은 16세기 초부터 1816년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약 300년간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을 통해 이 지역을 통치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양국은 외교 관계를 회복했고, 대규모 스페인계 이민이 이어지면서 언어와 문화, 종교, 혈연까지 공유하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반면 영국과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상처가 현재까지도 영유권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식민지배보다 현재 진행형인 영토 갈등이 국민 감정에 훨씬 강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것이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인식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