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유진 시의원 “이재명 대통령 암기력 상상초월”..."오세훈, 큰 그림 전문가"
[이슈밸리=윤대우 편집장] 어린 시절, 또래들이 만화책을 읽을 때 서울시의회 박유진 의원은 어머니 소장품인 여성지 ‘여원’을 읽었고 1980년대 초등학생이던 그는 9시 뉴스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잡지와 뉴스로 세상을 배운 소년은 22년간 기업 현장에서 브랜드를 만들던 마케터가 됐지만 어느 날, 뉴스데스크 헤드라인 한 줄로 인해 그는 정치인생으로 180도 바뀐 서울시의원으로 살아간다.
서울시의원 4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의정 전문 킬러라 평가받지만 되려 오 시장은 “박유진처럼만 일하라”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함께 재당선됐다.
박 의원과의 인터뷰는 선거를 앞둔 지난 2월 26일 서울 덕수궁 뒤편에 있는 서울시의원 회관에서 진행했다. 기자와 인연은 그가 위메프 창립 멤버 홍보실장이던 2015년부터였다.
기업의 ‘효율’을 몸에 익힌 사람이 공공의 ‘과정’을 배우기까지. 박유진 시의원의 이야기는 정치 이전의 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Q. 지난 4년간 오세훈 서울시장 정책 킬러란 평가로 꽤 불편하게 했던데, 되려 오 시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박유진처럼만 일해라”고 칭찬했다는데 사실인가요.
A. 오 시장님은 노회하고 안정감이 있다고 봤습니다. 정무적 판단력이 대단하다고 표현했고요. 사석에서 저를 좋아한다고, 국민의힘 의원들한테 “박유진만큼만 준비해라”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시장님과 1대 1 질의를 한 번도 안 빠지고 개근했습니다. 다만 오 시장님은 “큰 그림 전문가”이고 디테일한 실무형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대통령을 꿈꾸다 보니 늘 그 위상으로 산다는 표현도 나왔습니다.
* 박유진 서울시의원은 서울시 예산과 주요 정책을 집중 검증하는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을 상대로 가장 적극적으로 시정질문을 해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TBS 지원 중단, 대형 개발사업, 대권 행보 논란 등 오 시장의 핵심 정책마다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강한 견제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서울시의회 안팎에서는 박 의원을 '오세훈 시장의 의정 킬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Q. 이재명 대통령과 인연이 있으시던데
A.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원)과 이 대표(대통령)의 장시간(원문 기준 6시간) 인터뷰 콘텐츠를 기획할 때, 이 대통령의 인생을 ‘스캔’하듯 자료를 다 찾아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습 속도와 암기력, 학습 효과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느꼈고, “AI시대 리더에게는 이런 집요한 디테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10개월 공부해 대입 시험 292점을 받았고, 사법고시도 3년 만에 패스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Q. 22년 차 마케터”라는 커리어는 어떻게 이어졌습니까?
A. 제일기획 인턴으로 시작해 광고·마케팅 현장에서만 22년을 살았습니다. 이커머스 초창기였죠. 2010년 5월에 티몬, 8월에 쿠팡, 10월에 위메프가 생겼는데, 그때 제 둘째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고등학생이 됐으니, 한 생명이 자랄 시간을 회사와 같이 보낸 셈입니다. 위메프에서는 13년을 있었습니다.
Q. 위메프 이름을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A. 당시 소셜커머스 시장은 이름과 메시지의 싸움이었습니다. “소비자가 한 번 듣고 기억할 수 있는 단어”, “브랜드가 무엇을 하려는지 한 줄로 설명되는 메시지”가 중요했습니다. 위메프라는 이름도 그런 고민의 결과로 나왔습니다. 브랜드는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회사의 의도와 방향을 압축한 상징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름을 만들 때도 ‘읽히는가, 기억되는가, 의미가 연결되는가’ 같은 요소를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Q. 22년 기업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지방선거(2022년)를 계기로 정치권으로 입문했는데
A. 당시 김건희 여사 논문 사건이 터졌고, 저는 2000년도 국민대 총학생회장이었습니다. 대학 민주동문회에서 성명서를 쓰라는 압박이 왔습니다. 저는 22년 동안 마케터로만 살았기 때문에 고민이 컸지만, 결국 성명서를 쓰고 선배들을 설득해 200여 명 명의로 졸업장을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그날 연설이 MBC 뉴스데스크 헤드라인으로 나가면서, 하룻밤 사이에 저는 ‘반 김건희’ 상징 인물이 돼버렸습니다. 위메프의 얼굴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반정부 인사”처럼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회사에 누를 끼칠 수 없다고 판단해 책임지고 사직서를 썼습니다.
Q. 퇴사 이후 바로 선거로 이어졌나요?
A. 사직서를 쓰고 당시 이재명 후보를 도왔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 넋이 나가 있었는데, 제가 사는 은평뉴타운에 후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밖에 없다, 선출직이 돼서 싸우자”는 권유를 받았고,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이제 3개월 뒤면 재선 선거를 합니다.
Q. 기업과 공직의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도 컸을 텐데. 어떤 지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A. 22년 회사원으로 살다 공직자가 되니 처음 1~2년은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기업은 효율과 결과를 중시합니다. 그런데 공직은 과정과 절차가 핵심입니다. 뻔한 결정을 두고 회의를 다섯 번씩 하는 장면들이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지금은 “과정의 공공성”이 왜 중요한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Q. 그래서 본인 명함에 “기승전 일자리”라고 써놨다고요. 왜 일자리입니까?
A. 제 경험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영역이 일자리라고 봤습니다. 말 그대로 기승전결이 일자리로 귀결됩니다. 정책도, 예산도, 제도도 결국 시민 삶의 안정과 연결되는데, 그 핵심이 일자리라고 생각합니다.
Q. 4년간 구체적 정책 성과는 무엇이 있나요.
A. 민주당 조례 경진대회에서 ‘1인 창조기업 설립 및 지원 조례’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핵심은 “5인 미만 기업”, 즉 작은 조직이나 1인 기반 창업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길을 연 것입니다.
예컨대 회계나 총무를 20년 한 분이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창업하면, 서울시가 지원할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이미 상위법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조례가 비어 있던 부분을 채워야 했습니다. 저는 그 빈칸을 찾아 다듬었습니다. “자격증이 없어서 지원 못 받는다”는 구조 자체가 공공이 전문성을 놓치는 방식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Q.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하행선(서울 밖으로 나가는 방향) 폐지도 본인이 주도했다고요?
A. 제가 의원이 되자마자 바꾼 게 남산터널 혼잡통행료입니다. 지금 서울 밖으로 나가는 방향은 안 받잖아요. 그걸 제가 없앤 겁니다. 원래 3년 한시 조례였는데 26년 동안 3,300억 원을 받아왔습니다.
상대를 설득하는 논리는 “탄소 절감”과 “최단거리”였죠.
지금은 탄소 절감 시대입니다. 남산터널은 두 지점 사이 최단 거리입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가장 짧은 길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그 길로 가면 돈을 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통행료를 안 내려고 남산 도서관 앞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방치하면서, 최단 거리 이용자에게 통행료를 매기는 건 형용모순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나가는 쪽부터 폐지했고, 대안으로는 도심 전체 관점에서 탄소세·환경세 같은 방식으로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Q. 배우 구교환 닮았다는 이야기 혹시 안 듣습니까.
배우 구교환 닮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고3 때 별명이 유덕화였고, 좀 더 어릴적에는 탤런트 이세창 씨 닮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기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Q.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여원 잡지로 한글을 뗐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A. 저는 ‘여원’으로 한글을 뗐고, 초등학생 때 이미 현대사 사건들을 잡지로 읽었습니다. 교과서가 시시할 정도였고, 9시 뉴스가 제일 재밌었습니다. 박진영(JYP) 씨가 제 고등학교 선배인데, 저는 그분과 정반대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숙제를 다 하고 노는 스타일이었고, 저는 9시 뉴스가 끝날 때까지 버티다가 밤늦게 숙제를 시작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지리 숙제 하나를 해도 전국 지도를 완벽하게 그려야 직성이 풀리는 모범생 기질도 있었습니다.
Q.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인데, 어떻게 험난한 정치가의 기질을 갖게 되었나요?
A. 중3 때 전교조가 생기면서 사립재단 비리에 눈을 떴고, 고등학교 때 신문반을 만들어 의식화 동아리를 운영했습니다. 학력고사 100일 남겨두고 후배들을 앉혀놓고 광주항쟁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몸을 던질 결의까지는 아니면서, 후배들에게 멋진 선배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죠. 지금도 노동자·서민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면서 처자식을 챙기는 생활인으로 사는 것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솔직히 있습니다. 다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은 분명합니다.
Q.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런’, ‘기후동행카드’ 등의 정책을 평가하면.
A. 오 시장의 ‘서울런’ 같은 교육 사다리 정책은 방법론은 수정하더라도 방향성은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기후동행카드 같은 대중교통 활성화도 시대적 흐름이라고 봤고요. AI 시대 리더십은 “나만 믿고 따라와”가 아니라 ‘페이스메이커’ 같은 동행 리더십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감독이 포지션을 단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해보게 지원하고 시민이 답을 찾도록 돕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시장의 서울이 아니라 시민의 서울이 되어야 하고, 리더는 시민이 꿈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로 연결됐습니다.
Q. 만약, “청와대에서 부르면 갈 의지가 있나요”
A. 저는 청와대 갈 의지는 있지만, 선출직은 임기 완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뽑힌 만큼 맡은 임기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재선이 되면 기획경제위원회 위원장을 하려고 합니다. 기조실과 경제실을 관리하는 자리이고, 시장의 공약을 컨펌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핵심 위치라고 봅니다. 시의원 두 번 하고 구청장으로 가는 것이 표준 공식처럼 작동하는 현실도 있고요. (중간에 비서실장도 “계획은 공유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Q. 끝으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A. 등산, 축구, 헬스를 좋아합니다. 74년생이라 노화는 받아들이지만, 운동의 즐거움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내는 승무원인데 지금도 즐겁게 비행하고 있고, 아들·딸도 독립심 있게 잘 자라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인물 있습니까.
A. 김우영 의원을 추천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정무조정실장이고, 구청장 두 번, 부시장, 비서관을 거친 경력이 있습니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분입니다”. 이슈밸리 취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