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반도체 훈풍에 번진 성과급 소용돌이…지금은 ‘회사 안정’이 먼저다
[이슈밸리=윤대우 기자] 한국 경제가 버티는 마지막 굵은 기둥 가운데 하나가 반도체라는 점은 이제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의 2026년 3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3% 급증했고, 반도체 수출은 151.4% 늘어 전체 수출 급증을 사실상 견인했다. 제조업 경기 역시 3월 PMI(구매관리자지수)가 52.6으로 4년여 만에 가장 강한 확장 흐름을 나타냈다. 꺼져가던 한국 경제의 숨통을 반도체가 겨우 다시 틔워주는 국면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반도체 순풍이 결코 안전한 바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물류와 원자재 조달망이 흔들리면서 전 세계 공장들이 투입 비용 상승과 운송 차질을 겪고 있고, 실제로 반도체와 첨단산업 공급망에 쓰이는 헬륨과 화학 원료 수급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한국 역시 중동 변수로 수출과 공급망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렵게 찾아온 업황 회복이 외부 충격 한 번에 다시 꺾일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호황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시기에 국내 반도체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부 분위기는 생산과 투자, 연구개발에 전력을 집중하기보다 성과급 문제로 술렁이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노조가 임금 및 성과급 체계 개편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와 총파업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4월 23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고, 5월 21일부터 18일간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불법 행위를 막아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갈등이 단순한 노사 신경전을 넘어 공급 차질 우려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도 조용하지 않다. 회사는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영업이익의 10%를 PS(초과이익분배금) 재원으로 쓰는 구조를 마련했고, 기존 상한도 없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내년 지급될 성과급이 수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아직 확정된 숫자가 아닌 전망치와 추정치가 과열돼 떠도는 측면은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미 그 기대 자체가 산업 전반의 보상 기준을 흔드는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이 큰 이익을 냈다면 직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고, 성과를 함께 나누는 문화는 장려돼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질서이기도 하다. 직원들의 헌신 없이 오늘의 반도체 호황도 없었다. 성과를 낸 조직이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원칙’이다. 원칙이 흔들리면 보상은 격려가 아니라 갈등의 불씨가 된다. 삼성전자 노조가 경쟁사 사례를 근거로 성과급 기준을 더 강하게 요구하고, SK하이닉스는 업황 호조 속에서 파격적 보상 기대가 커지는 상황은 각각 별개의 사건처럼 보여도 본질은 같다. 회사의 장기 경쟁력과 산업 전체의 균형보다, 당장의 몫을 둘러싼 기대와 압박이 먼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금이 노사가 정면충돌할 때가 아니라, 재도약을 위해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더 가깝다. 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등 판이 빠르게 바뀌는 와중에 생산 차질과 내부 분열은 경쟁사에 시간을 벌어주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삼성의 노조도 사측도 ‘지금 밀면 더 받을 수 있다’는 계산보다 ‘지금 흔들리면 더 크게 잃는다’는 현실을 먼저 봐야 한다. 실제로 현재 삼성의 갈등은 글로벌 수요가 강한 시기에 평택 공장 생산 차질 우려로까지 연결돼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마찬가지다.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준다는 약속은 호황기에는 박수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는 대표적인 업황 산업이다. 좋을 때의 기준을 못 박아놓으면, 나쁠 때의 충격도 그만큼 커진다. 업황이 꺾였을 때 성과급 축소나 중단은 더 큰 박탈감과 반발로 되돌아올 수 있다.
당장은 통 큰 보상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노사 모두를 더 예민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제도는 늘 호황이 아니라 불황까지 견디는 설계여야 한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파급효과다. 한쪽에서 수억원대 성과급 기대가 커지고, 다른 한쪽에서 이를 기준점 삼아 투쟁 수위가 올라가면, 반도체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전반으로 성과급 갈등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 전체가 아직 완연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초대형 기업의 보상 경쟁이 산업 현장의 상대적 박탈감과 노조 압박을 동시에 키운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결코 건강한 신호는 아니다. 중동 전쟁으로 원가와 공급망이 흔들리는 시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필요한 말은 ‘가화만사성’이 아니라, 어쩌면 ‘회사 안정 만사성’인지도 모른다. 회사 내부가 안정돼야 연구도, 생산도, 투자도, 수출도 제대로 굴러간다. 노조는 회사를 쓰러뜨려서는 자신들의 미래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봐야 하고, 경영진은 숫자와 규정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보상은 더 정교하고 예측 가능해야 하며, 투쟁은 더 절제돼야 한다.
반도체 호황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은 더 멀리 봐야 한다. 한국 경제가 모처럼 잡은 반도체 회복의 흐름을 살리려면, 성과급이 불씨가 아니라 동력이 돼야 한다. 삼성도, SK하이닉스도, 그리고 그 노사 모두도 이제는 ‘얼마를 더 받을 것인가’보다 ‘이 호황을 얼마나 오래 지킬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할 때다. 그 질문 앞에서만, 한국 반도체의 다음 10년, 20년도 비로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