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특집] 73년 만의 안보 격변, '적국' 프레임 깬 ‘간첩법’ 개정 통과
[이슈밸리=권동혁 기자] 대한민국 국회가 지난 26일 본회의를 통해 형법 제98조(간첩죄)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북한'에만 국한됐던 간첩의 정의가 '모든 외국'으로 확장되면서 대한민국 안보 지형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슈밸리는 이번 개정의 핵심 의의와 파급 효과를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했다.
◆ '적국'에서 '외국'으로... 73년 낡은 안보 족쇄 풀고 '국익 중심' 전환
이번 개정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한 점이다.
그간 우리 법원은 간첩죄의 대상을 오직 북한으로만 한정해 왔으며, 이로 인해 우방국이나 제3국을 위한 정보 활동, 혹은 해외 기업을 위한 핵심 기술 탈취 행위에 대해 간첩죄를 묻지 못하는 안보 공백이 지속되어 왔다.
개정안 통과에 따라 이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해를 끼치는 모든 외국의 정보 활동을 엄단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이는 미국(경제간첩법), 일본(경제안전보장추진법)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이미 시행 중인 '포괄적 안보 체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며,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정보 주권 국가로 거듭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 기술 유출은 곧 '국가 반역'... '솜방망이 처벌' 끊고 실효적 억제력 확보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사라진 '기정학(技政學)' 시대에 발맞춰, 첨단 기술 유출을 단순 경제 범죄가 아닌 '간첩 행위'로 격상시킨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과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가 전략 자산을 해외로 빼돌려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에 그쳤던 사례가 많았으나, 이제는 '외국 간첩죄' 적용 시 최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특히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의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기술 탈취 시도 자체를 억제하는 강력한 심리적 방어선을 구축했다.
수사 기관 역시 산업 스파이 사건을 다룰 때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수사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우리 핵심 산업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패가 될 전망이다.
◆ 글로벌 안보 표준 합류와 남겨진 숙제... 수사권 남용 및 외교 마찰 관리 관건
대한민국은 이번 개정으로 서방 안보 블록의 표준에 합류하게 됐지만, 동시에 고도의 법적·외교적 관리 역량이라는 과제도 떠안았다.
민간 영역의 기술 교류와 정당한 학술 활동이 '간첩 행위'로 오인되어 위축되지 않도록 '국가 기밀'에 대한 정교한 가이드라인 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수사 범위가 민간 기업과 외국 단체로 넓어짐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정보 수집 권한 강화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와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우방국과의 정보 협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마찰을 관리하기 위한 외교적 세밀함이 병행되어야만, 이번 간첩법 개정이 국익 수호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73년 만에 한국에서 ‘간첩법 개정안’이 통과 됐다는 소식에 해외 언론들도 반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한민국은 마침내 자국 영토 내에서 외국 스파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70년 된 법적 허점'을 메웠다“면서 ”이는 반도체와 국방 기술을 노리는 세력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적인 기술 강국인 한국이 그동안 외국 기업이나 국가를 위한 기술 유출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했던 것은 아이러니였다”면서 “이번 법 통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의 기술 자산은 보다 견고한 법적 방어막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