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진단] SPC 사태가 말해준 '향긋함' 뒤 불편한 진실...새벽 빵집 분진·천식·안전 부재중

빵 굽는 나라’의 역설… 새벽 분진 노동 외면한 10년 달콤한 산업의 숨겨진 독성… 제빵 노동의 분진 위험

2025-12-12     이슈밸리

 

[이슈밸리=산업분석팀] SPC가 최근 수년간 반복된 산업재해·사망 사고로 국민적 비판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은밀한 위험은 여전히 새벽 빵집 내부에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과점 약 3만 2천 곳, 그 안에서 새벽 2~4시에 반죽을 시작하는 9만~11만 명의 종사자들은 매일 밀가루 분진과 고열, 화학물질, 환기 사각지대 속 놓여 일한다.

SPC의 사고 이후 “업계 전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의 새벽 제빵 노동은 현대식 공정의 외관과 달리, 1990년대 수준의 공기·안전 관리에 머물러 있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슈밸리는 국내외 실증 연구와 전문가들의 공식 발언을 기반으로, 새벽에 문을 여는 빵집의 공기와 위험을 정밀하게 들여다봤다.

◆ 밀가루 분진과 ‘베이커스 아즈마’… 연구는 이미 경고했는데 업계만 모른 척했다

한국 직업환경의학계는 10년 전부터 제빵업의 호흡기 위험을 반복적으로 지적해왔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에 실린 대형 제빵회사 근로자 380명 연구에서 밀가루·효소 분진 알레르기 민감화 21%, 그리고 의학적으로 확진된 ‘제빵공 천식’(Baker’s Asthma)은 3.2%로 보고됐다. 직접 노출 공정에서는 이 수치가 더 높아졌다.

정혜선 교수(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 연구 논문에서 “제빵공의 직업성 알레르기 질환과 천식은 과소평가돼 왔다. 밀가루와 효소에 의한 분진 노출은 뚜렷한 건강 위험요인이며, 제빵업 전반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호텔·백화점·개인 빵집을 포함한 다른 국내 조사에서도 종사자의 25%가 작업 관련 천식 증상, 40%가 비염·코막힘·눈 자극 증상을 호소했다. 문제는 위험 경고가 있어도, 현실의 소규모 공방 대부분은 공기질 측정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새벽 오븐의 열기·세척제·가스…‘빵 굽는 냄새’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위험

실내 공기 오염은 분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유통업체 내 베이커리 구역 공기질 분석에서는 포름알데히드·아세트알데히드·곰팡이·세균 농도가 매장 평균보다 높고, 드라이클리닝 용제로 쓰이는 테트라클로로에틸렌이 실외 대비 수십 배 검출된 사례도 보고됐다.

해외 연구는 이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핀란드의 여러 유형(전통·산업·마트 내 베이커리) 빵집 4곳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호흡구역 분진이 1.3–15.1 mg/m³, PM10은 최고 28.3 mg/m³까지 올라가 “모든 형태의 베이커리에서 노출 저감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났다. 

이탈리아 소규모 베이커리의 실내 공기를 분석한 연구는 새벽 3~9시 오븐 가동 시 PM2.5·PM10이 외부보다 현저히 높아지며, 작업자 바로 주변에서 급상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제는 호흡기만이 아니다. 대형 제빵공장에서 이미 사고를 냈던 반죽기·성형기·컨베이어는 끼임·절단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SPC 사태가 상징하듯, 안전장치 부재와 인력 부족은 여전히 업계의 구조적 문제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이 발행한 ‘밀가루 분진 노출 및 제빵 종사자의 민감화 평가’ 건강위험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밀가루·빵가루·첨가물에 민감화된 근로자는 작업 중 천식 악화, 기침, 쌕쌕거림, 코·눈 자극을 명확히 보고하고 있으며, ‘제빵공 천식’은 분명한 직업성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특정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 업계가 이미 알고 있는 현장 위험성이다.

◆ 해외는 규제·노출 기준 강화… 한국은 여전히 ‘무측정·무관리’ 사각지대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는 밀가루 분진을 공식 위험물질로 지정해 저분진 밀가루 사용, 국소배기, 보호구, 습식 청소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실제 HSE 사례 보고서에는 분진 저감형 밀가루 도입과 장비 조정만으로 근로자 노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노동자 보상 위원회(WorkSafeBC)는 더 직설적이다. 

캐나다 WorkSafeBC는“밀가루 분진은 직업성 천식·호흡기 자극을 일으키며, 특정 조건에서는 폭발 위험까지 있는 위험 물질”이라면서 “사업주는 노출을 최소화할 설비·절차를 갖춰야 한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이런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빵집은 분진 농도, PM2.5,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측정한 적조차 없다. 환기 팬은 있어도 청소가 안 되고, 체질·반죽 구역은 좁고 분리되지 않으며, 방진마스크를 의무화한 곳도 드물다.

이 구조적 공백 속에서 수만 명의 제빵 종사자들은 지금도 자신이 어떤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SPC의 잇따른 사고는 새벽 제빵 노동의 공기·안전 구조를 통째로 드러낸 계기였다.

호흡기 알레르기와 제빵공 천식을 보여주는 국내외 연구는 이미 10년 전부터 경고해 왔지만  한국의 다수 빵집은 여전히 측정도 관리도 없는 ‘눈 가리고 아웅’이란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노동업계 한 관계자는 “정말 필요한 것은, 새벽 빵집에서 일하는 이들이 ‘정상적인 공기’를 마시며 일할 권리를 되찾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한국 베이커리 산업이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