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6월 항쟁 상징...백기완 소장 89세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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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6월 항쟁 상징...백기완 소장 89세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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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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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왼쪽)이 생전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출처=이정미 정의당 의원)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왼쪽)이 생전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오른쪽)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출처=이정미 정의당 의원)

 


[이슈밸리=권동혁 기자] 80년 6월 항쟁 당시 100만 인파가 모인 가운데 열변을 토하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89세로 영면했다. 

고인은 지난해 1월 서울대병원에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50년대 후반부터 농민운동과 빈민운동에 투신했던 백 소장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 반대운동부터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헌을 촉구하기 위해 재야인사 30명의 일원으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이듬해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됐다. 

1979년 민주청년협의회 결성에 참여한 백 소장은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인 'YW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구속수감됐다. 백 소장은 2019년 11월 이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백 소장 등 당시 시위를 주도한 핵심 인물 14명은 서울 용산구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또 고인은 1986년에는 명동성당 성고문 폭로대회를 주도하다 수배 중 구속됐고 고문 후유증이 도져 한양대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는 형집행정지로 나오자마자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해 시민대표로 연설했다.

백 소장은 1987년 12월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고인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노랫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운동권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향인 황해도를 그리워하면 쓴 '장산곳매 이야기'라는 수필집도 있다. 

글쓰기에 탁월했던 백 소장은 열렬한 국어순화론자로 순우리말 쓰기를 강조했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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