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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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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대화'
  • 이슈밸리
  • 승인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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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헤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동주 헤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이슈밸리=이동주 칼럼]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진료는 대화로 이루어집니다. 진료에는 시진 촉진 청진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지만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들을 모두 다 합한다 해도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정보에 비하면 미미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환자와의 대화는 의사에게 중요한 진료의 방법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환자와 더 효율적인 대화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의사들에게 항상 고민이 되는 주제입니다. 성공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환자분들로 하여금 어떻게 의사의 얘기를 잘 듣게 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진료를 하면서 환자분들은 어떤 얘기를 잘 듣는지 경험적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엇보다 환자분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를 잘 듣습니다. 생각보다 환자분들은 치료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고 전문가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그에 따라 자기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혈액검사 상 간 기능 이상 소견이 보이고 명백하게 알코올성 지방간이 의심되는 소견이어서 술을 끊으시라는 권고를 드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에 대해 지킬 수 있든 못 지키든 간에 노력하겠다는 약속이라도 하셔야 하는데 그보다 우선은 간에 좋은 약을 달라 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간에 좋은 약이 어딨습니까? 술을 끊으시기 전에는 어떤 간장약을 쓰셔도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간장약 같이 먹으면 좀 낫지 않겠어요? 간에 좋다고 선전 많이 나오던데 좀 줘보세요”
“아뇨. 그러면 오히려 간장약 믿고 술을 끊으실 생각들을 안 하십니다. 술을 일주일 한 번씩만 드시고 오시면 그때 제가 간장약을 드리겠습니다. 술부터 정리하세요”
“약 먹으면서 정리할게요. 간장약 좀 주세요”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진료실을 나가게 되면 밖에 나가서 간호사한테도 똑같은 얘기들을 반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은 뭔가 ‘몸에 좋으니 이런 것 먹어봐라’ 같은 얘기를 솔깃해하고 그런 얘기는 아주 잘 듣습니다. 반면 아무리 전문가가 하는 말이라 해도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이를 어떻게든 피해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당연한 얘기지만 환자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정확한 얘기보다 부정확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더 잘 듣습니다. 건강에 대한 조언이라 할지라도 낯선 의사의 말보다 옆집 친한 아줌마의 조언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도 환자와의 관계 형성에 많은 관심을 둡니다. 우선 환자와의 관계가 좋아야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라포(rapport)를 형성한다’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의사와 환자 간의 이러한 라포 형성이 잘 되어있어야 의사가 하는 말이 환자에게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내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서는 옳은 얘기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얘기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어떤 얘기를 하는가보다 어떤 사람이 얘기하는가가 더 중요다는 것이 지금까지 진료를 해오면서 느끼던 바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의료 정책들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의사와 정부, 의사와 국민 간의 대화도 이와 마찬가지 상황에 놓인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하는 얘기는 맞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치료에 돈이 들지 않게 하겠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그보다 근본적인 우리나라 의료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돈을 써야 한다는 얘기는 당장 나의 얘기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방에 의사들이 부족하니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대책이 지방에 왜 의사가 부족한지를 구구절절 분석하고 설명하는 말보다 명확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의료 정책에 대한 대화에 있어서 의사와 정부 간의 라포, 의사와 국민 간의 라포는 거의 최악인 것 같습니다. 정부는 의사협회를 대화의 상대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불편한 관계입니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사에 대한 이미지 또한 돈만 밝히는 욕심 많은 극우 꼴통 이미지이니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한들 좋게 들릴 리가 없고 의사들이 파업한다 해도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난만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옳은 얘기라면 듣기 좋게 말하는 기술도 필요할 것이고 반대로 듣기 싫은 얘기라도 귀기울여 듣는 지혜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기 원하기 전에 우선 상대방과 좋은 라포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반대로 아무리 싫은 사람이 하는 얘기라도 그 안에 어떤 진실이 들어 있는지 듣고 판단하는 인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이상적인 얘기들을 쉽게 한 것 같습니다만 이 모든 것들이 다 성립해야 성공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애초에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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