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권동혁 기자] 일본의 차기 총리에 한일 역사문제에 비교적 온건한 목소리를 내온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이 결정됐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27일 오후 도쿄 당 본부에서 개최한 총재 선거를 통해 12선의 이시바 전 간사장을 28대 총재로 선출했다.
그는 이날 결선 투표에서 215표를 얻어 194표에 그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을 21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후보자 9명이 난립한 이번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154표를 얻어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181표)에 27표 차로 뒤졌으나, 결선 투표에서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2008년부터 이번 선거까지 다섯 차례 총재 선거에 도전한 끝에 드디어 당권과 총리직을 거머쥐게 됐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내달 1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인 집권당 당수가 총리를 맡는다.
자민당은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함께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시바 차기 일본 총리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2000년 출범한 고이즈미 정권에서 첫 방위상을 역임했고 후쿠다 정권에선 방위대신, 아소 정권에선 농림수산대신, 자민당이 야당 시절에는 정조회장이 됐다.
이시바의 역사관은 역대 일본 총리들과 결을 달리한다. 특히 2차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온 인물이다. 이시바 총재는 총재 선거 유력한 경쟁자였던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과 달리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시바 총리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해 수백만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한다" 입장이다. “전쟁 이전의 일본 행동도 모두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난징 대학살에 대해 "적어도 포로 처리의 방법을 잘못한 것은 사실인데, 이는 군기와 군을 모두 문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정확한 속내를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일본 정치권 내에서 우익들이 싫어하는 민감한 부분에 목소리를 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 2019년 8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이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에 있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시바 내각은 윤석열 정부와 한일관계를 원만하게 풀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시바는 일본 정치인으로선 이례적으로 크리스찬이라고 고백한 인물이다. 기독교 기반이 취약한 일본 정치권 내 이질적인 인물인 셈이다. 이런 그에 대해 아베 전 총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시바는 안 된다”고 반대한 바 있다.
따라서 이시바 당선은 자민당 의원과 당원들이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 우익 편향의 일본에서 '변화'를 택한 결과로 분석된다.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총재가 소속 의원들로부터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보다 16표 많은 189표를 얻은 배경에는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극우 인사인 다카이치를 '선거 얼굴'로 내세우면 중도층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원들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방위상을 지냈고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아 방위력 강화와 개헌은 기시다 총리 이상으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