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사설] 2024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삼성생명)이 협회와 대표팀 운영 전반에 대해 작심 발언을 한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배드민턴 협회를 면밀하게 조사해 봤더니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후원 물품을 공식 절차 없이 배부한 김택규 배드민턴협회 회장에 대해 ‘페이백’ 의혹이 제기됐고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안 하는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선수는 지도자·협회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대에서나 쓰는 규정이 논란이 됐고 신인 실업 선수의 계약 기간과 계약금·연봉을 제한하는 규정도 지적됐다.
협회가 개인 후원을 과도하게 제한하면서도 후원사로부터 받은 보너스를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협회 이사, 원로 등에게 지급된 사실도 파악됐다.
70~80년대에나 있을 법할 일이 아직도 체육계 버젓이 통용되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문체부는 관련 사안을 계속 조사 중이고 이는 다른 체육 분야에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꼭 배드민턴 협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인 진종오 의원은 배드민턴 외 태권도, 사격 등 종목에서 70여 건의 체육계 비리 제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대한사격연맹을 정면 조준해 "신임 회장 선임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선수 포상금 미지급 등 문제가 발생했다"며 "사무처장과 사무처 내부에서 부정·비리와 관련된 여러 제보가 접수됐다"고 폭로했다.
배드민턴연맹과 대한사격연맹만 놓고 봤을 때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포상금 및 보너스 등이 미지급됐고, 선수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규제하거나, 협회 시스템이 매우 전근대적이란 점과 국가대표 후원 물품 내용을 수기로 작성하는 등 부실하게 관리 운영되고 있었다.
국가대표들이 이 정도로 대우를 받았다면, 비 국가대표, 체육과 대학생 그리고 초·중·고등학교 체육·운동부는 어떨지 우려가 된다. 그간 매스컴에는 종종 체육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선배들로부터 복종과 강요를 받거나 집단체벌을 당하는 모습이 보도된 바 있다.
국내 모든 분야가 변화와 혁신을 이루고 있지만 유독 체육계만 이렇게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국내 대학교 체육과 학생들은 학교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의무적으로 구입해 반강제적으로 입어야 하는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 체육과 학생들은 선배들에게 90도 인사를 하는 모습이 길거리에서 종종 포착되기도 한다.
체육계의 오랜 악습과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굳이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아니더라도 투명과 공정한 시스템으로 오늘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양궁은 협회 자체가 선수들을 지원할 뿐,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일절 안 한다고 한다. 당연히 포상금이나 보너스 지급도 정당하고 공정하다. 도쿄 올림픽 금메달 3관왕 안산이 이번 프랑스 올림픽 최종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곳이 양궁계이다. 그만큼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좀 더디지만, 공정과 투명의 시스템을 지향하는 마당에 유독 국내 체육계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이번 계기를 통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 학생들이 억울하고 피눈물 흘리며 운동을 배우는 게 아니라, 공정과 희망의 미래 가치를 바라보며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 체육·스포츠계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