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의 청진기] 당뇨병의 합병증-당뇨병성 족부병증 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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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의 청진기] 당뇨병의 합병증-당뇨병성 족부병증 ⓷
  • 이슈밸리
  • 승인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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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슈밸리=칼럼] 환자와 의사의 만남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환자도 의사가 마음에 들어야 병원을 찾게 되고 의사도 환자를 볼 때 단지 환자의 병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진료실 안에서는 아픔을 호소하고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전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매 순간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의료 현장이지만 이곳도 사람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언제나 기능적인 필요만 오고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모든 환자들을 존중하지만 특별하게 마음이 가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김포 해드림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김포 해드림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그 중에서도 제가 참 좋아했던 환자 P씨에 대한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P씨는 60대 중반의 나이부터 저에게 오셨었습니다. 다니던 병원에서 오랫동안 당뇨 관리를 받으셨었고 저희 동네로 이사 오시면서 저희 병원에 오시게 된 분이었습니다. 

대머리가 반쯤 벗어지고 전형적인 동네 아저씨같은 인상으로 항상 웃으며 어린 저에게도 언제나 존대하시며 기분 좋은 인사로 진료실을 들어오시던 분이셨습니다. 

워낙 성격이 좋아서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법이 없고 바쁜 사람들 시간 뺏으면 안 된다며 얼른 처방만 받고 가시려고 하는 분이셨습니다. 세상 낙천적인 성격의 P씨는 당뇨환자임에도 매일 저녁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이 일상인 분이었습니다. 

병원 주변 식당을 가게 되면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많은데 만날 때마다 이른 저녁에도 이미 취해서 ‘원장님하고 술 한잔해야 하는데’ 하면서 기분 좋게 술잔을 권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저는 이분의 생활 패턴이 어떤지 뻔히 알고 있으니 진료실에서 맨날 같은 잔소리를 합니다. 
“어떻게 맨날 제가 갈 때마다 그 삼겹살집에 계십니까. 그렇게 삼겹살에 소주를 사랑하시면 안 돼요, 술 좀 줄이시고 담배 끊으세요, 운동 좀 하시고”

 저의 똑같은 잔소리만큼이나 P씨의 대답도 언제나 똑같습니다. 
 “아니 그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삽니까. 다 즐겁게 살자고 약도 먹고 병도 치료하는 것 아닙니까. 술도 못 먹고 놀지도 못할 거면 그냥 죽어야지 뭐”

 잘 조절되지 않는 그분의 혈당을 보면서 저러다 큰일 나지 싶다가도 하루하루 유쾌하게 살고 있는 그분의 삶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루를 살더라도 즐겁게 살겠다는 그 마음을 응원하게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강하게 뭐라 하지도 못하고 저 또한 그분에게 그저 좋은 의사로 관계를 이어가는 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동안 그분이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약을 받으러 오실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통 안 보이실까 궁금해질 무렵 P씨가 어느 날 병원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P씨의 걸음걸이가 이상한 겁니다. 걸음걸이가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P씨는 이전과 다름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바지단을 걷어 올렸습니다.

“‘원장님 나 병신 되어버렸어요. 당뇨 무섭네. 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분의 걷어올린 바지단 아래로는 마네킹 발 같은 의족이 보였습니다. 

이분은 안 보이던 사이에 다리를 절단하고 오신 겁니다. 발톱을 자르다 살짝 다쳤는데 안 낫더랍니다. 점점 상처가 커지고 심상치 않아지자 바로 큰 병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치료한 지 오래지 않아 다리를 절단해야만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겁니다. 바로 당뇨병성 족부병증이 생긴 것입니다.

“이러고도 여전히 빨빨거리고 잘 돌아다닙니다” 하며 이전과 다름없이 호탕하게 웃는 P씨의 모습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금 더 철저하게 관리하라고 다그칠 것을 제가 P씨에게 너무 사람 좋은 의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라는 유명한 야구 명언처럼 당뇨 합병증 관리에 있어서 환자들에게 너무 사람 좋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당뇨병의 합병증 중에서 당뇨병성 족부병증은 가장 끔찍한 합병증인 것 같습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까 싶은 합병증이다 보니 다른 합병증보다 훨씬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합병증임에도 가장 소홀하기 쉬운 합병증입니다. 

당뇨환자는 평생 발을 손처럼 관리해야 하고 작은 상처에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도 문제는, 그것이 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당뇨병성 족부병증이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뇨병성 족부병증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당뇨병성 족부병증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당뇨병의 다른 합병증들도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P씨는 그 뒤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결국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발로가는 혈관과 신경이 망가져, 절단을 해야 할 상황인데 심장의 관상동맥이 온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하러 온 P씨의 아내를 보며 제가 참 좋아하던 환자에게 저는 가장 나쁜 의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많이 후회했었습니다. 그런 후회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당뇨병의 합병증에 대해 구구절절 글을 쓰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뇨병의 합병증을 말씀드리면서 너무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 맞습니다. 당장 오지 않는 합병증, 당장 아프지 않은 합병증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해드릴 방법은 공포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공포가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이제는 당뇨병이 어떤 병인지, 그리고 그 합병증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 당뇨병을 관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사라면 희망 없는 공포만 말씀드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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